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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ul 19. 2023

소개팅은 삼세판

꽤 괜찮은 인생메이트_07


소개팅에는 암묵적으로 지켜야 하는 룰이 하나 있다. 바로 '세 번 안에는 결판을 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세 번째 만나던 날은 주일 저녁이었다. 남편은 나를 데리러 와주었는데, 일을 마치고 바로 오느라 정장 차림이었다. 우리는 미리 알아둔 파스타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근처의 적당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푹신한 소파 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를 한참, 돌연 남편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방비 상태로 편하게 등을 기대고 늘어져있던 나도 덩달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심지어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리기까지 했다.


갑작스럽게 조성된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남편은 입을 열었다. "내 직업을 알고 날 만난 거잖아? 근데 어떻게 알면서도 선뜻 만나겠다고 했는지, 그게 어떻게 괜찮았는지 궁금해." 그렇다. 남편의 직업은 보통의 모태신앙 자매님들이 가장 기피하는 업종 - 그중에서도 단연 1호, 사역자였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면접이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오늘 하는 거 뭐 고백 그런 거 아니었어?' 세 번째 만남이니 뭔가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했지만, 분명 이런 그림은 아니었다. 어쨌든 일단 질문이 들어왔으니, 대답을 해야만 했다. 나는 배탈이 난 사람처럼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대답을 했다. 내 대답이 적당히 만족스러웠는지 남편은 곧바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주었다. "이미 알고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앞서서 6년간 연애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장기 연애 끝에 헤어진 남자라는 꼬리표는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치러지고 있는 이 깜짝 면접(이것이야말로 정말 문제였다.) 앞에서, 어지간한 것은 문제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남편은 내 대답을 듣고는 한결 부드러운 표정이 되었다. '아, 끝인가?' 나 또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려던 찰나 남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또..! 뭐가 더 남았는데?!' 슬슬 괴로우려던 참에 남편이 뱉은 말은, 다행히도 질문이 아니었다. "우리 둘이 같은 마음인 게 제일 중요하지만, 나는 우리 관계에 대해서 부모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는 이렇게 제안했다. 고작 연애만 두고 보면 과한 처사일 수 있지만, 서른 언저리의 우리에게 연애는 곧 결혼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사역자 사위를 들이는 일 - 그렇게 딸을 사모의 길로 떠나보내는 일은, 믿는 부모님들에게 적잖이 심란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남편이 배려의 의미로 한 말이었다. "음, 그런데 나는 사실 이미 말씀을 드렸었거든. 두 분 다 괜찮으시대." 두 분이 아주 반색하신 건 아니었지만 일단 확실히 반대는 아니었기에, 나는 '괜찮다'는 표현을 골랐다. 남편은 이 포인트에서 갑자기 눈을 아주 동그랗게 뜨고 기뻐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더 이상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관계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자기와 생각이 통했다는 부분에서 우리가 서로 꽤 잘 맞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날을 기점으로 연애가 시작되었고,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연애의 기준과 결혼의 기준은 아무래도 그 경중과 관점에 차이가 있다. 연애를 연애로만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나 같은 사람조차도(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가볍게 만나는 것이 안 되는 유형이다.) 연애를 결심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결혼을 두고는 아주 심사숙고하는 태도로 임하게 된다. 모두가 진지하고 까다롭게 다루는 문제인 것은 똑같지만, 개개인이 가진 성향이 다 다르고 기준이 다르기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무어라 명확하게 표현하기 난처하게도, 이 판단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육감이다. 혹자는 ‘내 인생의 빅데이터’라고 부르는 그 감각, 느낌이나 촉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단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이날의 ‘면접‘이 떠올랐다.


남편의 ‘면접’ 안에는 결혼을 고려할 때 확인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전부 담겨 있었다. 첫 번째 -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있냐는 물음을 통해서 상대도 같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결혼을 하면 운명 공동체로서 함께 많은 것들을 결정하게 된다. 이때 서로가 비슷한 기질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큰 갈등 없이 둘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경제관념이나 이성관 등 부부간 주된 갈등의 원인이 바로 이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중요성이 더욱 선명하게 와닿을 것이다. 두 번째 - 남편은 자신이 연애/결혼을 하는데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6년간의 장기 연애 경험’이라는 단점을 솔직하고 용감하게 드러냈다. 나를 배려하는 동시에 자신의 단점이 나에게 수용 가능한 문제인가를 확인한 것이다. 세상에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단점을 가진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운이 좋다면, 그것이 그다지 단점처럼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찝찝한 문제는 처음부터 시원하게 털어서 상대도 배려하고 내 마음도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이 과정을 거치면 서로 더욱 신뢰하는 관계될 수 있다. 세 번째 - 부모님께도 의견을 구하자는 제안을 통해서 가족의 동의를 얻은 관계가 되는 동시에, 가정의 분위기까지도 알게 되었다. 결혼에 있어서 양가 부모님의 반응은 아주 중요하다. 그 반응이 긍정적이면 긍정적일수록, 또 양가의 가풍이 닮으면 닮을수록 문제는 적게 일어난다. 단순히 ‘화목한가’라는 막연한 기준이 아니라, 가족 간에 서로 얼마나 의존하고 간섭하는지, 어떤 갈등이 있으며 또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의 세세한 부분들을 잘 살펴보고 내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인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결혼 전 고려해 보야할 것들에 대해 잘 알고, 또 자신이 꽤나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한다고 해도 ‘잘 판단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랑은 사실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향이 큰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은 단순히 감성의 영역을 넘어서 내가 평생 의지를 들여 ‘책임’ 져야 하는 관계이기에, 아무리 열렬히 사랑한다 하더라도 이성적인 관점에서 내가 장기적으로 납득하거나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을 발견한다면 서로를 위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무엇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창문으로 도망가는 사랑인 것이다.)


한 번 다녀오는 것, 정말 이전보다 흠이 아닌 세상이다. 하지만 ‘살아보고 괜찮으면 살고, 아니면 말고’보다는 더 신중하고 진중한 마음으로 결단하는 결혼을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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