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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ul 17. 2023

결혼괴담

꽤 괜찮은 인생메이트_06


이제 서류상으로는 1년, 함께 산지는 9개월쯤 되었다. "결혼하니 좋아?"라는 질문을 꽤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아주 만족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면 안 할 거라던데, 신기하네.” 결혼은 무덤에 제 발로 걸어가는 일이고, 결혼식장 문이 열림과 동시에 지옥문이 열리는 거란다. 해 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뱉으며 몸서리를 치고, 안 해 본 사람들은 그 괴담에 지레 겁을 먹는다.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무덤처럼 춥고, 외롭고, 지옥처럼 괴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을 그렇게 만든 것은 결혼 그 자체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서로가 아닐까? 가만 생각해 보면, 결혼은 죄가 없다.


결혼은 덕도 없고 죄도 없다. 그저 그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덕이 되고 죄가 될 뿐이다. 좋은 일은 냉큼 내 덕으로 돌린다. 가끔은 네 덕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쁜 일은 내 탓이 아닌 것 같다. 그럼 네 탓이구나 하니 제 탓도 아니란다. 그래서 결국 여기에 그 죄를 달아버린다. "결혼이 그런 거야." 그렇게 주인 없이 덩그러니 버려진 비난거리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결혼이란 이런 거야." 세간에 떠도는 '결혼괴담'은 이렇게 태어났다.


괴담은 괴담일 뿐, 생각보다 많은 부부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더 나아가 '결혼 전도사'라 불리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지인들 앞에서 바보스런 표정을 한 팔불출이 되고 싶지 않아 허세를 담은 괜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이 되면서 겪게 될 경제적인 염려, 두배로 늘어난 효의 의무에 대한 부담감(비슷한 맥락으로 '시월드'에 대한 두려움), 배우자가 신뢰를 저버리게 될 것을 지레 걱정하는 불안감. 이것들은 분명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백이면 백 겪게 되는 필수 관문은 아닐뿐더러, 보통은 둘이서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헤쳐나갈 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관문들을 해결해 나가며 얻게 될 전우애는 덤이다.




'결혼'이란 것은 언뜻 합리적인 행위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오롯이 내 소유였던 것을 대가 없이 나누어야 하고, 내 자아를 거슬러 상대를 용인해야 하며, 혼자일 때는 짊어질 필요가 없었던 의무나 책임을 얻게 된다. 막연하게 두고 보면 터무니없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대입하면 분위기가 제법 달라진다. 오롯이 내 소유였던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나누고, 때로는 내 자아를 거스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을 위해 서로 배려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의 목표(가정)를 위해 의무와 책임을 공유하고 또 함께 짊어지는 삶. 그저 입 바른 소리 같고 현실감각 없는 사랑 타령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랑을 전제로 한 두 사람의 '결혼'이란 연합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아내'와 '남편'이라는 정체성은, 그 이름을 얻는 동시에 그러한(부부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세상의 이치로는 잃는 것이 더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더욱 풍성한 삶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 결혼. 떠도는 '괴담'으로 인해 문턱을 넘어 서기를 주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물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또는 마음의 상처로 인해 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한 경우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 이런 경우라면 내 제한적인 경험과 짧은 식견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기에 함부로 권하고 싶지 않다.) 분명 쉽지 않은 발걸음이지만, '둘'의 협력이 있다면 혼자서는 결코 갈 수 없는 영역까지 충분히 닿을 수 있을 거라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묵직한 무게로 삶을 감당하게 되더라도, 아이러니하게 지금(혼자일 때) 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도.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이 모든 이야기 앞에는 '나와 잘 맞는 사람과 함께'라는 전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조건에 부합한 사람인지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 글에서 나와 남편의 경우를 들어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서로를 '꽤 괜찮은 인생메이트'라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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