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인생메이트_05
우리 신혼 생활의 장르는 ‘코미디’다.
느닷없이 ‘공주님 안기’(드라마에서 첫 날밤 신랑이 신부를 침대로 데려갈 때 양팔로 들어 안는 것)를 해달라거나, 방금 두통을 호소하다가 보고 있던 영상 속 주인공도 타이밍 좋게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나한테 옮았나 보다!’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는 남편의 엉뚱함.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는 남편의 입을 쥐고 뻐끔뻐끔 움직이며 복화술을 하는 내 장난스러운 행동. 약수터의 아저씨처럼 어푸어푸 거친 세수를 하는 나와 반대로, 새색시처럼 조신하게 톡톡 세수를 하는 남편의 모습. 서로의 잠버릇과 동글동글 튀어나온 뱃살까지도.. 일상의 사소한 모든 일들이 배꼽 사냥을 한다. 덕분에, 막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감사하게도 지금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다. 내가 가장 염려했던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었는데, 걱정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이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넉넉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소득 수준이 높지도 않고, 서로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거나 거창한 이벤트를 준비해 주는 일도 없다. 마음만 먹으면 해외 어디든 놀러 다녀올 수 있는 여유도 없고,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방문하기는커녕 그런 핫플레이스를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 행복의 원천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뻔한 단어, '사랑'.
좋은 사람과 더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카톡이나 전화 말고 얼굴을 마주하는 생생한 대화의 시간을 매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 배경이 우리 집의 소박한 식탁 위나, 조금 어수선한 거실일지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소한 일들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사랑의 힘, 오래오래 한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결단(결혼)이 주는 선물이다. 물론 부유함이 주는 기쁨과 만족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구나 그 '높은 수준'의 환경 속에서라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낮은 곳에서 빛을 발한다. 조금은 시시하거나 초라해 보일지 모르는 일상 속에서, '그럴지라도'라는 이름으로.
사랑은 비단 경제적인 부분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ENFP / INTJ로 거의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고, 타고난 감정의 폭도 다르다. 각자의 직업 탓에 생활 루틴도, 휴일도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 사이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장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기에 그 시간에 충실하려는 노력. 그 노력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어져 갈 때, 그것으로 인해 상대방이 기뻐하는 것을 볼 때 행복을 느낀다. 상대를 위해 힘쓰고 마음 쓰는 것(내 것을 소진하는 일) 조차도 기꺼이 기쁨이 되는 마법, 그리고 너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에 되는 마법- 이 또한 사랑의 힘이다.
우리의 연약함, 부족함 속에서 사랑의 힘은 빛을 발한다. 그리고 자기주장이 아니라, 자기희생(헌신)에서 솟아난다. 그리고는 충족된 환경에서 오는 만족감보다 더욱 깊고 짙은 행복을 안겨준다. 빛이 닿아야만 반짝거리는 별이 아니라,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태양처럼. 비가 내리면 생겼다가 곧 사라지는 물 웅덩이가 아니라, 안에서 솟아나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사랑이 있는 한 행복은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 안에도, 이미 누리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그리고, 이제는 사랑의 힘을 아는 당신의 마음속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