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인생메이트_04
결혼 준비를 시작하기 고작 몇 달 전, 21년도 12월에 큰 웨딩 컨설팅 업체 대표가 수많은 예비 신랑 신부들의 결혼식 비용을 들고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중에는 내 지인이 둘이나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 선뜻 웨딩 업체, 플래너를 끼고 하기가 마음이 편할리 만무했다. 때마침 나와 남편은 시간의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보기로 했다.
“뭘 먼저 해야 하지..?”
막상 시작하려니 아무런 정보가 없어 난처했다. 어찌어찌 검색을 통해 결혼 준비 어플을 추천받았고, 함께 어플 구석구석을 살펴본 후에야 겨우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예식장 예약부터 웨딩촬영, 드레스&메이크업, 혼주 한복, 본식 촬영 등등.. 알아보고 결정할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상형 월드컵’을 천 번쯤 한 것 같다. 그렇게 둘이서 아등바등하기를 약 9개월, 고대하던 D-day가 되었다.(결혼식을 어서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숙제를 끝내고 싶었다.) 드디어 식을 마치고 예식장을 나서는 순간, 우리 사이에는 끈끈한 동료애 같은 무언가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그저 허례허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결혼식’그 자체가 아니라 ‘결혼식을 준비 기간’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 기간이 없이 바로 함께 하는 삶 - 결혼의 일상으로 돌입했다면 과연 우리는 괜찮았을까? 물론 잘 지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허둥대며 새로운 환경과 관계들에 적응하느라 바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결혼식을 준비했던 그 기간이 마치 ‘물맞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맞댐’은 어항에 새로운 물고기를 들이기 전에 거치는 절차이다. 우선 새 물고기가 담긴 봉지를 곧 입수하게 될 어항에 띄워둔다. 일정 시간이 지나 물의 온도가 맞아지면, 시간차를 두고 봉지 안으로 어항의 물을 조금씩 넣어주다가 적당히 새 물에 적응했다 싶을 때 어항으로 입수시켜 주는 것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기간은 이 과정과 같다. 두 사람이 새로 꾸려진 가정 안에 바로 뛰어들지 않고, 맞닿은 채로 조금씩 맞추어 간다. 너무 덥거나 차가운 온도에 놀라지 않도록, 그리고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당황하지 않도록.
그 의미를 알고 보낸 시간은 아니었지만, 9개월여의 ‘물맞댐’ 덕분에, 지금 우리 가정에는 잘 적응한 물고기 두 마리가 함께 하고 있다. 제삼자의 가이드나 조언 없이 오롯이 둘 뿐이었기에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그 시간을 지혜롭게 잘 보낼 수 있도록 함께 마음을 모아주었던 남편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