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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Feb 25. 2022

나의 열정에 대하여

가장 열정적이었던 무언가에 대한 기록


나의 열정에 대하여.

나는 왜 이번 달 글쓰기 모임 주제를 듣자마자 혜은이, 세븐, 유승준, 코요테의 열정까지 노래만 줄줄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혜은이의 열정. 

안갯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 거는 사랑,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


노래를 한참 흥얼거리며 생각해보니 나의 구남친이자 현남편과의 연애시절이 떠오른다.


남편은 당시 서른넷의 비혼 주의자였고, 나는 좋은 인연을 만나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싶었던 연애욕구 뿜 뿜 스물여덟이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사촌오빠 결혼식이었는데, 남편은 부신랑이었다.

_제주에는 부신랑, 부신 부라는 독특한 결혼문화가 있다. 결혼식 날이 가까워지면 신랑, 신부의 절친을 각각 정해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잡무를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그날 개인적인 일로 결혼식이 끝나고 도착했는데, 친척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피로연장을 바쁘게 오가는 그를 보며 "자인 뭐? 무사 정 와리 맨?(쟤는 뭐야? 왜 저렇게 서둘러?)"라며 궁금해했다.

작은 사촌오빠가 부신랑이라며 소개해준 그는 단정하게 차려입은 서른넷의 오빠야였다.

또래들끼리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소개팅 이야기가 나왔고, 그는 나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겠다 약속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는 뭘 그리 멀리서 찾냐고, "네가 내 딸을 만나보는 건 어떠냐"라고 물었다.

역시 엄마의 눈은 정확했다. 내게 딱 맞는 남자를 한눈에 알아보고 딱 골랐다.

그땐 서로 어이없어하며 웃으며 지나치고 그가 주선한 소개팅도 하고 그 외 여러 소개팅을 거치고 거쳐 내 짝은 정말 없는 걸까 좌절하며 그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결국 내가 그를 덥석 물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나를 덥석 문 거 같은데? 낄낄.


인연 만나기가 뭐 그리 어려운지, 괜찮다 싶은 애들은 이미 다 짝이 있고, 내 짝은 도대체 어디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거냐며,  "내가 정말 별로인가, 왜 이렇게 인연이 없지?"라며 하소연하는 내게 "너 정도면 괜찮지, 감사하지!"라는 그에게 "그럼 오빠 나랑 한번 만나볼래요?"라고 물었고, "우린 얽힌 인연이 많아서 만나면 결혼해야 돼! 자신 있어?" 했다.

순간 좀 당황했는데 "응! 하지 뭐 결혼!"하고 우리의 연애는 시작됐다.


연애를 시작한 첫날 2014년 3월 31일.

우리는 10시간이 다 되도록 핸드폰 충전을 해가며 밤새 전화통화를 했다. 

다음날 아침이 하필 만우절이라 지난밤의 이야기가 만우절 장난은 아닐까 꿈은 아닐까 설렜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루라도 안 보면 보고 싶고,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며 매일이 그렇게 즐거웠다.

진짜 드라마처럼 온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이고 좋아 죽겠던 나날이었다.


본가는 서귀포지만 직장이 제주시라 제주시에 살았던 남편은 나를 보러 한 시간 거리를 자주 오갔다. 

당시엔 절대 "장녀, 서귀포 여자, 스케줄 근무하는 여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남편은 정말 딱 싫다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나를 만났다.

2교대 3교대 근무를 하며 밤새는 일이 허다했던 나는 야간근무를 마치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며 1시간을 달려 그를 만나러 갔다.

수많은 사랑노래 가사는 다 우리 얘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랑표현도 그땐 정말 진심으로 표현했다.  부끄러움따위 느껴지지 않을만큼 그저 좋았다. 그냥 좋아 죽겠더라.

정말 인연이란 게 있는 건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

그토록 싫었던 조건도 너라는 이유로 이해가 되고 정말 모든 것이 좋았다.


처음엔 비밀리에 연애를 시작했지만 두 달도 안돼서 엄마한테 들켰고, 3개월 만에 양가 부모님을 다 만나 뵌 우리는 1년의 연애기간을 갖기로 약속했다.

적어도 결혼하려면 사계절은 지내보고 결혼해야 한다며 결혼 날짜를 잡고 신혼여행 계획까지 세워 

2015년 3월 29일에 결혼해 3월 31일 프랑스 에펠탑을 바라보며 1주년을 기념했다.



기한을 정해놓으니 하루하루가 아쉬워서 정말 원 없이 연애했다.

연애 때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업 해두고 매주, 매계 절 도장깨기 하듯 추억을 쌓았다. 

다시 돌아가도 그만큼 열정적이게 연애할 수는 없을 것처럼.

그래, 우리 정말 원 없이 연애했다. 원 없이 사랑했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딸과 아들이 생겼고, 함께한 추억과 함께 우리 사이는 더 단단해졌다.

연애 때만큼 활화산 터져 오르는 사랑은 아니라도 온돌처럼 따뜻하게, 대체로 행복하게 매일을 사랑하며 보낸다.

(물론 이렇게 사랑하는 날도 있지만, 매일 이렇게 타오르면 아마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 거다. 낄낄)


내 인생 최고의 열정! 을 떠올릴 때 그 상대가 그대여서, 고맙다.

늘 든든하고 멋진 내 사랑. 오늘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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