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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Mar 10. 2022

전업맘의 선택과 자유 그리고 책임에 대하여.




지난 1월 말. 둘째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의 코로나 확진으로 시작된 가정보육.

1년 중 가장 짧다는 2월을 세상에서 가장 길게 보내고 3월 초 아이들의 입학으로 드디어 가정보육에서 해방됐다.


그동안 매일 아침 늘어가는 확진자수를 보며 기관과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등원 여부를 결정해야 했던 지난한 눈치싸움 기를 보냈는데, 이젠 별수 없이 '못해도 고!' 해야만 하는 초등학교 학부모가 된 것이다.

더 이상 등원 여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어쩔 수 없이 보내야만 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 사이에서 매일 아침 줄타기를 하게 됐지만 선택과 책임에 대한 짐을 벗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그간 나에게 매일 아침 해야 했던 등원 여부 선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전업맘이라 아이들의 등원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은 내게 너무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늘어가는 확진자수를 보며 이 시국에 전업맘이라는 사실이 참 고맙고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참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불안해도 등원시켜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었던 적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더. 전업맘인 나라도 가정 보육하며 긴급 보육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다.

등원해서 기관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줄 수는 있겠지만, 

보내고 불안할 바에는, 하루 종일 마스크 끼고 생활하며 힘들어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애써 가정보육을 했다. 아니해야만 했다.


하지만 선택의 자유는 늘 책임을 동반했고, 그 책임이 내겐 너무 가혹했다.

주변의 모든 기대와 관심은 나의 선택에 집중됐고, 나에게는 그 선택에 따른 현실이 너무도 힘들었다.

자발적 선택 같았지만 언제나 자발적이지만은 못했던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겠지.


겉보기엔 늘 '선택은 자유'였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누구 하나 나에게 탓하지 않을 거라고들 했지만, 두려움에 떨며 큰맘 먹고 등원시키면 아무도 없는 거실 소파에 잠시 앉아 쉴 때조차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등원 후 누리는 나만의 시간 속 행복만 포기하면, 나만 뼈와 살을 녹여 아이들의 육아에 집중한다면, 모두가 편할 수 있을 텐데,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등원 후 누리는 나만의 시간이 머리로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확신이 자꾸만 힘을 잃게 됐다.


그렇게 힘 잃은 확신은 길고 긴 가정보육을 낳았고, 2월을 꽉 채웠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지만 정말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던 시간들.

그래서 지쳤고, 더 힘들었던 가정보육의 시간들.

그나마 3월 입학이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정말 길고 긴 2월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긴 2월을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길어진 2월이 가정보육 안에서 만들어진 우리만의 루틴이 안정감과 함께 익숙해질 무렵 3월이 왔다.

더 이상 두렵다고 뒤로 물러설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이젠 언제 어디서 누가 걸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오늘 하루도 무사히'라는 바람으로 곧 다가올 내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매일 아침 '오늘의 자유와 행복이 마지막일 것 같으니 마음껏 누리자' 다짐하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때를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본다.


3월만 기다린 들뜬 아이들과 그 애들 챙기느라 정신없는 엄마의 콜라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카오스로 다가왔고, 혼란스러운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뭘 해도 반쯤 넋을 놓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직은 적응이 안 되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우리는 다시 새로운 우리만의 루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카오스가 우스워질 날이 곧 오겠지.

지금 느끼는 불안의 하찮음을 논하며 새로운 고민과 걱정을 끌어안고 이때를 추억하는 날이.

그때 다시 이 글을 읽으며 불안했던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괜찮다. 충분하다. 잘했다. 잘하고 있다. 잘할 거다.

매일 아침 내게 거는 주문.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나의 주문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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