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람 Mar 17. 2022

지혜로운 엄마

엄마 1학년 적응기간 2주를 보내고.

지혜로운 엄마

지잉 지잉 진동과 함께 전파탐지기 알람 소리에 베개 밑을 더듬어 서둘러 알람을 끈다.

혹시 몰라 켜 둔 알람 리스트가 10분 간격으로 울리고 출근 준비하는 남편의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5분만 5분만 속으로 외치며 자꾸만 이불을 끌어올렸다.


"여보, 일어나. 지금 안 일어나면 안 돼. 나 출근하고 나서 또 잠들면 진짜 지각이야."


엉엉. 내가 고3 때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는데,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자마자 이렇게 아침잠과 싸워야 하다니 너무 억울하다.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겨우 뜬 눈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서니,

어제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가지고 놀던 장난감 더미를 시작으로 어젯밤 '내일의 나에게 미뤄놓은' 집안일들이 이른 아침부터 김주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빠르게 거실 정리를 시작으로 아이들 아침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깨우러 간다.

레이스 달린 플라워 패턴의 귀여운 앞치마를 두르고 온화한 미소를 띠며 상냥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내 귀요미들아, 일어나~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하며 귀여운 아이들의 엉덩이를 통통 두드리고 모닝 뽀뽀를 날리며 사랑을 듬뿍 담아 아이들을 안아줘야지.

라는 꿈같은 시나리오? 노노. 이렇게만 된다면 흔하디 흔한 동화책 속 엄마가 왜 공룡이고 왜 괴물이고 마녀겠는가.


잠자는 아이들 방문을 똑똑 두드리자마자 들려오는 아이들의 짜증 섞인 울음소리.

"싫어어어. 안갈래에에에에. 더잘래에에에에"

아니 그럼 어제 늦게까지 놀지 말고 일찍 잤어야지!


저녁 8시 반부터 잘 준비를 하고 9시에 누우면 뭐하나.

침대에서 수면등 켜고 도란도란 나누는 꿈같은 잠자리 대화에서 엄마가 제일 먼저 잠드는 걸;

어르고 달래도 안돼서 화도 내봤는데, 아침부터 화내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5분만 10분만 더 재웠다고 벌떡 예쁘게 일어나주지도 않는 애들. 결국 거실 티브이로 유튜브를 켰다.


늦게 일어나면 아침이라도 간단히 먹고 가지. 아침은 또 꼭 밥으로, 먹을 만큼 먹어야 일어서는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외치고 싶지 않아 아침마다 심호흡을 얼마나 하는지.


오늘도 엄마의 사리 공장은 사리가 탈탈탈.



지각도 결석도 자유로웠던 유치원 등원 전쟁은 그저 소꿉놀이에 불과했구나.

그동안 힘들다 했던 등원 전쟁은 전쟁도 아니었네. 매일 아침 등교 전쟁이 진짜 전쟁이다. 휴.


렇게 벌써 3월 셋째 주가 되었다.

2주간의 적응기간 동안 등교 전쟁 후 집안일 좀 하고 돌아서면 하교, 돌아서면 하원.

매일 아이 둘이 가져오는 서류더미 작성, 준비물 준비, 스케줄 조정 만으로도

엄마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길어진 아이들과의 시간에 후 달리는 체력과 멘털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며 2주가 흘렀다.


3월만 되면, 입학만 하면 그래도 모든 게 술술 잘 풀릴 거다. 잘 적응할 거다. 믿었는데…..


첫째는 등교 첫날부터 '궁금해서'라는 이유로 새 필통을 가위로 잘라 오질 않나, 외투를 잃어버리고 오질 않나, 너무 신나서 자기 물건도 잘 못 챙길 만큼 들떠서는 하굣길마다 새로운 충격으로 나를 놀라게 했고,

둘째는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종일 멀뚱히 앉아서 친구들 놀이하는 걸 구경만 하다 오기도 하고, 화장실 타이밍을 놓치거나 바지에 실수를 하고도 말하지 못하고 그대로 귀가하는 날이 잦았다.


새로운 환경이 신나고 좋아서 너무 들뜬 게 걱정인 딸과 너무 낯설고 어려워서 적응 못하는 아들 사이에서 나는 정말 혼란스러운 2주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 후 아이들과 시댁에 들렸다가 어머님과 이야기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간의 아이들 이야기를 전하며,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잘 적응을 할까.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시간이 늘어감에 어느 정도 풀어주고 어느 정도 제재를 가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를 만나 고민스러워하는 내게 시어머님은 말씀하셨다.


"괜찮다, 다 괜찮다. 애들 다 잘 적응할 거다. 그리고 너도 지혜로운 엄마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세상에. 다른 말 하나도 안 들리고 나는 '지. 혜.로. 운. 엄. 마.' 이 단어에만 꽂혔다.


어머님이 정말 나를 믿고 지지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라 그간의 고민과 걱정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어머님의 힘 있는 이 한마디가 너무 든든하고 의지가 됐다.


맞다. 나도 아이들에게 이런 엄마가 되어야지.


매일 밤낮으로 아이들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모습 말고, 속으로 아무리 걱정이 되고 고민이 되어도 애써 쿨한 척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쨌든 나는 너를 믿고, 너를 응원한다. 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정말이지. 지. 혜. 로. 운. 엄마가 되어야겠다.



앞으로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 오더라도, 어머님의 믿음처럼.

세상 그 누구보다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아이들의 앞날을 응원할 거다.


늘 고맙고 존경하는 우리 어머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전업맘의 선택과 자유 그리고 책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