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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Mar 24. 2022

나의 달콤한 사치


어제, 엄마 심부름으로 마트에 들렸다가 튤립이 보여 한 다발 구매했다.


마트 갈 때마다 화훼농가 돕기 프로젝트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튤립 판매대를 보았지만, 치솟은 장바구니 물가에 별걸 사지 않아도 생활비 예산을 훌쩍 넘어버리는 게 허다해서 애써 못 본 척 지나쳤다.

화훼농가가 아니라 나를 도와야 할 것 같은 나날들.


그런데 어제는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지나칠 수 없었다.

' 이 꽃 한 다발로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에 시금치보다 비싸고 빵보다 비싸고 커피보다 비싼 튤립 한다 발을 덥석 결제했다.



지난주 '당신의 사치는 무엇입니까?'라는 주제의 민선님의 글을 보고 한참 고민했었다. 

사치.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나에게 사치는 무엇일까? 


사실 나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커피였지만, 커피를 사치라 칭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값싸고 빠르게 기쁨과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커피는 사치라기보다 상비약 아니 영양제로 여겨져야 맞지. 사치가 아니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물론 값싸고 간편한 캡슐커피를 두고 남타커에 의존하는 생활은 사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끔 누리는 남타커의 즐거움까지 사치로 치부하기 싫었다.


그럼 좋아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늘 망설이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건 나에게 꽃이었다. 


돌아보면 나의 엄마는 늘 꽃과 함께였다. 

매계절 집안 곳곳에 꽃으로 향기를  피우고, 계절마다 돌아오는 꽃놀이에 진심이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도 애정을 듬뿍 담아 사진으로 담고, 낙서도 꽃으로, 브로치도 꽃으로, 그릇도 꽃으로, 심지어 그 흔한 행주에 놓는 자수도 꽃이었던 소녀 같은 내 엄마.

삼십 년이 넘도록 아빠한테 그 흔한 꽃다발 한 번 받아본 적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만, 본인 스스로 계절마다 집안을 꽃으로 꾸미고 즐길 줄 아는 엄마는 그 자체로 꽃이었다.


엄마 덕분에 나도 늘 꽃을 보며 자랐고, 꽃을 즐기며 누리며 살았다. 


나의 엄마는 늘 나에게 롤모델이었기에 나도 엄마처럼 평생 꽃을 즐기며 누리며 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했다. 꽃과 함께하는 삶.


그런데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 나만의 가정을 꾸리고 보니, 꽃을 즐기며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다정한 남편을 만나 때마다 꽃 선물을 받고, 계절마다 꽃놀이를 즐기러 다니며 나름 누리고 있지만, 집안에서 꽃과 함께 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이가 어릴 땐, 화병이 깨지기라도 하면 위험할 것 같아서 꺼렸고, 아이가 조금 크고 난 뒤에는 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다 보니 점점 잊혀 갔다.

그래도 꽃에 대한 애정이 있어 몇 해 전에 마음이 맞는 동네 엄마들과 플라워 클래스도 듣고, 꽃 모임도 함께하며 꽃을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늘 꽃과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느 날은 그 꽃이 돼지고기도 되었다가, 도넛도 되었다가, 물티슈도 되었다가, 책이 되기도 했지만, 놓지 않고 꿋꿋하게 놓지 않고 간간이 즐기며 살고 있다.


누군가는 어차피 시들어 버릴 꽃 아니냐며 사치 중의 사치가 꽃이라고 했지만 그 잠깐이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삶에 있어 필요에 의해서만 소비를 하고 생활을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필요보다 충분이 앞서기도 하고 필요가 충분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필요충분이라는 것도 있는데.

어찌 늘 필요에만 집중해서 살아갈 수 있느냔 말이다.


늘 달콤한 꿈과 희망만 먹고살 순 없지만. 가끔은 나에게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사치를 부려봐도 좋지 않을까.

어제의 달콤한 사치로 엄마와 내가 행복했던 것처럼.


당신의 사치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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