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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Apr 14. 2022

이토록 아름다운 벚꽃을 주시다니요.

일가족 코로나 확진 이야기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결국 우리 집에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 쫄보 중의 상쫄보였던 나라서 주변에서는 네가 걸리는 정도면 이제 안 걸릴 사람 없을 거라고 할 정도였는데 결국 우리집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얼마 전 둘째 유치원 선생님 확진 소식을 접하고 설마설마했지만, 첫날 검사에선 음성이었고, 증상 하나 없던 우리 아들이 삼일째 검사에서 두줄이 나올 줄이야^^

하긴, 전국민 5명 중 하나는 양성이라는데 우리만 아닐 이유가 없었다.

너무 놀라서 가족 모두 검사했더니 다행히 아들만 양성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부터 첫째가 열이 난다. 혹시나 해서 어제 한 첫째의 키트를 다시 보니 희미한 두줄이 보인다.


아… 시작이구나.


다음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신속항원 검사를 받으러 갔다.

어차피 걸리는 거 그럼 가족 모두 걸리고 지나가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신랑과 나는 음성이었다.

‘그럼 혹시 저희는 안 걸리고 지나갈까요?’하고 의사에게 물었더니 기대하지 말란다. 하하.

그래.. 그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확진 소식을 주변에 알리고 덤덤히 기다렸다. 

번호표를 뽑고 바로 다음 내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둘째는 처음부터 무증상이라 평소와 다름없이 보냈는데, 첫째는 고열과 두통이 약 3일쯤 지속됐다.  그래도 다행히 워낙이 어릴 때부터 잔병치례도, 입원도 잦았던 첫째라서 열이나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무던히 버텨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첫째의 고열에 민감했던 남편이 하룻밤 꼬박 열보초를 서고 다음날 아침부터 목소리가 변하더니 그날 아침 확진을 받고 앓아누웠다. 

날아다니는 둘째, 열 오르면 처지고 열 내리면 날아다니는 첫째, 종일 고열과 인후통으로 고생하는 남편을 돌보느라 녹초가 된 나.


아니  왜 나는 증상이 없어? 나 왜 멀쩡해? 나 무증상 확진인가? 


어차피 격리할 거라면 차라리 다 같이 확진돼야 하는데 왜 나만? 차라리 확진이었으면 좋겠다.

몸은 멀쩡했지만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집안일에 시달린 나는 무조건 3일 안에 확진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종일 아이들과 뒹굴고 먹고 자며 이틀을 보냈다.

제발 제발 제발 기도하는 마음으로 확진을 기다렸는데  3일째가 돼서야 목이 좀 칼칼한가? 싶다가 확진을 받았다.


이로써 일가족 확진 성공!!! 


확진되자마자 모두에게 축하를 받았다. 이게 축하받을 일이었나. 하하하.


한 치 앞도 모를 인생.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세상 사람 모두가 걸려도 우리만은 살아남아야 한다며 조심조심 그렇게 예민하게  2년 넘는 시간을 보냈는데,  사흘 내내 확진이길 바라며 기도하며 보낸 내가 너무 웃펐다.


확진받자마자 갑자기 어딘가 아픈 거 같고 힘들었는데 가족들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맘껏 아프지도 표현하지도 못하고 격리기간을 보냈다.

하루씩 릴레이 확진이 되는 바람에 이레였던 격리기간은 아흐레가 되었고, 아이들은 등하교해줄 엄마가 자가격리 중이라 등교, 등원도 하지 못하고 아흐레의 집콕 생활을 꽉꽉 채웠다.


그래도 확진 소식에 매일 밤낮으로 현관 앞을 가득 채워주시는 양가 부모님의 사랑, 핸드폰으로 날아오는 내 사람들의 애정과 응원이 듬뿍 담긴 기프트콘, 매일의 안부를 물어주는 고마운 연락들이 참 많은 힘이 됐다.

특히, 지난 주말에 미리 당겨 받았던 남편의 결혼 기념 꽃다발이 시들해져서 우울해할 무렵 너무너무 너무 감동이었던 센스만점 한나 언니의 꽃 선물. (언니 진짜 최고!)

진짜 진짜 너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꼭 꼭 꼭 잘 기억해뒀다가 꼭 복수해줘야지. 고마운 내 사람들.


평소엔 눈 깜짝하면 지나던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게 흐르는지.

하필이면 벚꽃 블루밍으로 시작해서 벚꽃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우리의 결혼 주간을 집콕으로 보내야 해서 속에서 천불이 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의  7주년 결혼기념일 선물이 코로나라니 아주 고오오오맙습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이 현실이 너무 화가 났다. 

격리기간 내내 인스타 피드에 올라오는 벚꽃사진들을 보며 벚꽃이 다 져버릴까 봐 애가 탔다. 


그래서 격리 해제가 되자마자 아이들과 미리 점찍어둔 벚꽃 포인트를 갔는데 이미 벚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또한 예뻤지만 너무 속상했다.


역시 벚꽃은, 자연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하교하자마자 한 시간을 달려 제주시로 갔다.


자연이 날 안 기다려줘? 그럼 내가 따라가면 되지!


다행히 제주시는 벚꽃이 아직 만개해있었고, 반차를 쓰고 나온 남편과 우리는 제주시 벚꽃 포인트를 돌며 남은 봄을 만끽했다.

제주시 벚꽃까지 졌으면 비행기 탈 뻔했는데 어찌나 다행인지^^


한 시간을 달려간 보람이 있었다. 

그동안 집콕하며 웅크리고 있던 아이들도 나도 오랜만에 한도 없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늦은 밤 집으로 아오는 차 안에서 멀리 보이는 달과 흩날리는 벚꽃잎을 며 이렇게 속으로 되내어본다.

코로나로 좀 힘들었다고 이토록 아름다운 벚꽃을 주시다니요.

이 밤, 달이 참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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