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람 Feb 17. 2022

헤드헌터 이야기



목요일 오전 10시.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아니 방해받지 않겠다 다짐하는 나만의 시간.

특별한 목적을 두고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이 글들이 모여 무언가를 이루어내리라 믿어의심치 않는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간. 


오늘은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단톡방에 줌 링크 안내가 올라오고 콩이가 "머리 감아야겠죠?"하고 묻는다.

아 귀여워. 막내 콩이는 우리 모임의 귀여움을 담당한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귀여움을 장착하고 언니들에게 언제나 독보적 귀여움을 선보인다.

"난 안 감을 건데?"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줌을 켜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며 카메라를 켰는데 청하 언니가 "뭐야, 사자야?"하고 나를 놀린다.

화면 보고 깜짝 놀라 머리를 가다듬는다. 어머 내 머리 왜 이래. 낄낄.

그러고 보니 우리 참 많이 편해졌다. 우리의 첫 만남의 날이 떠오른다.

맥주 한 캔씩 들고 줌으로 만나 서로의 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했던 그날.

그 야밤에 풀메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눈썹도 그리고 입술도 칠하고 만났었는데.

이제 진짜 이미지 정화가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결혼, 임신, 출산을 겪으며 어느새 내 이름보다 누구 엄마, 누구 와이프, 등으로 불리며 내 이름을 잊고 산지 몇 년째.

코로나로 나의 시간도 몸도 마음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들어 갈 즈음.

나는 다시 나의 일상을 컨트롤하고 싶어서, 나를 찾으려고 온라인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나를 소개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데 까지 참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를 표현하는 단어(누구 엄마, 누구 와이프 등의 단어들)가 나를 옥죄어오고, 나의 선택과 도전에 장애물이 되는 것 같다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돌아본 나는 그 단어에서 도망쳤다가, 숨었다가 또 어떤 때는 보호받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시작해보려고 마음먹고 보니, 나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울 때도, 그래도 그동안 꽤 많은 걸 가지고, 이루었다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짙어지는 지금도 참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이 과정이 곧 나의 역사가 되겠지. 


나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함께하고 끝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는 우리 헤드헌터 모임.

코로나 이후 온라인 경제신문 읽기 모임으로 만난 우리는 그 속에서 원서 읽기 모임, 육아 스터디 모임, 그림모임, 글쓰기 모임, 독서모임, 인스타 부흥 모임, 다이어트 장려 모임, 드라마 모임, 핫딜 모임, 플래너 모임 등 수많은 크고 작은 모임으로 파생되었다가 다시 만났다가를 반복하며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그 무엇보다 센 힘으로 서로의 머리채를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페이스메이커를 충분히 해주고 있는 우리 멋진 헤드헌터들.


일상의 9할을, 가족보다 친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함께하는 우리는 소울메이트급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진짜 전생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함께 했던 걸까? 

주변에서는 온라인으로 만나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 모임을 유지하고 함께할 수 있느냐는 물음표를 던지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만의 깊고 찐한 우정을 쌓아간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너무 다른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연결고리 따위 없었을 텐데, 그리고 다들 일상에 충실하느라 이렇게 질긴 인연을 함께할 수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지긋지긋한 코로나도 고마울 때가 있네. 

역시 세상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진다. 뭐든 다 좋을 수 없고 뭐든 다 나쁠 수 없다.

그 속에서 그저 나에게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은 버려가며 나의 것을 만들어 갈 수밖에.


이 글을 빌어,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우리 헤드헌터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알랍 쏘 마취 헤드헌터!

작가의 이전글 말라비틀어진 마스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