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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May 19. 2022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나는   우리가족이 대체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살다보면 맑은날도 흐린날도 태풍이 부는 날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행복하다 생각할 수 있게, 긍정적이고 밝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늘 밝고 긍정적인 아이. 애교 많고 호기심 많고 매일이 즐거운 아이.

아이들은 내가 바랐던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며 기뻐만 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를 보며 자꾸 나도 모르게 걱정이 늘었다.


5월. 아이들도 학교에 어느정도 적응하고 엄마도 루틴에 익숙해지자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에선 사건사고가 터진다.

엄마와 떨어져 지낸 시간은 유치원때보다 줄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범위와 정도의 이야기로 요즘 같아선 정말 매일 정답없는 엄마의 지혜 시험대에 올려지는 기분이다.

특히 아이의 태도와 교우관계에 대한 부분은 정말이지 답이 없다.

엄마가 모르는 아이의 시간이 많아질수록 더 많이 내려놓고 믿음과 지지로 아이를 지켜봐주어야 하는걸 알지만 오늘도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예상된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과 마주하면 이미 렉에 걸린 로봇이 되고 만다.


최근 가장 걱정이었던 건, ‘결핍의 결핍’ 시대에 사는 아이들의 태도였다.

늘 부족하고 애탔던 우리때와 달리, 뭐든지 풍요롭고 애타는게 없는 아이들의 기다림을 못참거나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보게된 어떤 날은 정말 속상했다.

무엇하나 아쉬운 것 없이 채워주려 했던 나의 과오였겠지만, 풍요의 시대에 내자식만 부족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가 어디있으랴.

원하기도 전에 좋다는 건 미리 손에 쥐어주고, 필요하다고 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줬던 나의 탓이란걸 알게 되서 어떻게하면 이걸 바로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어제 학원 가는 차안에서 잠들어, 학원에 도착했는데도 졸리다며 학원을 가지 않겠다는 아이의 모습에 그동안 꾹꾹 누르며 참아왔던 나의 화가 터졌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컨디션이 안좋구나. 그럼 가서 쉬자’ 하며 아이를 달래고 수업을 포기했을텐데, 최근 아이의 태도가 머릿속을 스치며 오늘은 무조건 이걸 가르치고 넘어가야겠다!!! 며 아이에게 약속의 무게와 책임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정해진 시간과 구성원이 있는 그룹수업이라 약속에 맞춰 수업에 들어가야한다.

지금 너무 졸리면 잠시 시간을 갖고 늦더라도 수업에 들어가거나 니가 도저히 참여할 수 없을만큼의 컨디션이라면 니가 직접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오늘 수업을 포기하는 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졸리다는 핑계로 ‘그냥 이렇게 울면 엄마가 모든걸 해결해주겠지’ 라는 태도라면 나는 더이상 학원을 보내줄 수 없다고.

학원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고, 이 선택도 가족간의 합의로 결정된 약속이기 때문에 니가 소화해내지 못하는 스케줄이라면 포기하는게 맞다고.


물론 아이는 잠이 덜 깬 상태로 그저 울기만 하며 엄마의 설명따위 들리지 않고, 화난 엄마의 모습만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화내면서도 순간마다 이게 맞나? 내가 과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고민하면서도 오늘은 꼭 짚고 넘어가야했다.

누군가는 초1에게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니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딱 어제. 그 상황에서의 훈육이 꼭 필요했다. (이또한 나의 합리화일지 모르지만)


학원 건물에서 20분. 다시 차 안에서 25분여의 시간동안 설명하고 기다리고 다시 설명하고 기다리고를 반복해 수업이 다 끝날 쯤에서야 아이는 진정됐다.

수업 마치는 시간에 학원에 가서 선생님께 아이는 스스로 오늘 수업을 받을 수 없었던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주말에 보강수업을 받을 수 있는지 허락을 구한 뒤 보강약속을 잡고 귀가했다.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중간과정이 많지만 이정도로 정리한다.

(당일 노쇼는 원래 보강이 어렵지만, 선생님의 배려로 토요일 보강수업을 받을 수 있게 미리 엄마가 합의 한 상황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이후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도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고, 집으로 가는 차에 탄 뒤 첫마디가 “엄마, 비니 데리고 놀이터갈까?”였다.

결국 아이는 학원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엄마에게만 애타는 길고긴 훈육’을 잊어버렸는지도,

그저 내가 어제의 그 타이밍에 심사가 뒤틀려서 객기를 부린걸지도 모른다.


아이의 기분전환 스위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나만 또 고장났다.

결과적으로만 봤을때, 내가 원했던 선택지 중 하나로 마무리가 되긴 했지만, 찝찝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집에와서 일과를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무엇이 옳은가, 내가 잘못된 판단을 했던건 아닐까, 앞으로 또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진 않을까 등등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일들을 앞서 걱정하며 자괴감에 빠져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야근 중이라 전화로 밖에 내 넋두리를 들어줄 수 없던 남편에게 오늘자 엄마의 지혜 시험 가채점하며 남편의 진심어린 위로와 지지를 받았다.

어차피 정답은 없고 최고 아닌 최선의 선택지 밖에 없다는걸 알면서도 자꾸만 확인받고 싶은 마음. 이럴때 늘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육아동지 남편이 있어 참 든든하고 고맙다.


앞으로도 이렇게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나의 육아관을 뒤흔드는 일들을 마주하겠지.

매시기마다 부모의 고민과 걱정은 주제만 달리하며 끊이지 않고 죽을때까지 아니 죽어서까지 이어질거다.

그래도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엄마아빠와 함께 밝고 건강하게 잘 커갈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가족과 함께 가족 안에서 대체로 행복하게 살자.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리만의 속도로, 우리만의 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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