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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Jun 14. 2022

최고의 휴식

다시  6월이다.

2019년 엄마의 암수술 후 매년 6월이면 엄마랑 나는 정기검진을 위해 서울에 간다.

수술 후 첫해는 불안한 마음으로 긴장감을 안고 갔고, 그 후로 2년은 코로나로 불안을 넘어 공포에 가까운 긴장감으로 다녀왔는데 올해는 코로나도 잦아들고, 수술 4년 차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가볍게 서울로 향했다.


딸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도 이젠 딸일 수만은 없기에.

때가 다가오면 잠깐이지만 나의 빈자리가 신경 쓰여 몇 날 며칠을 준비한다.

2박 3일밖에 안 되는 일정인데 한참 비울 것처럼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집안을 둘러보고 잊은 건 없는지 체크하고 또 체크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서울로 향하는 날 아침.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고 공항으로 가야 했다.

내가 집을 비우는 사이 남편이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이 둘과 함께 50리터 쓰레기봉투와 캐리어를 양손에 들고 지하주차장에 갔는데 차가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고, 무거운 짐과 아이들을 이끌고 지상, 지하주차장을 오가며 차를 찾느라 아침부터 괜한 짜증이 단전에서부터 끓어올랐다.

급한 마음에 차가 안 보였던 건데, 괜히 아침부터 출근한 남편에게 짜증을 한껏 퍼붓고 아이들에게 건조한 배웅을 하고선 돌아서며 후회했다.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을 안고 엄마를 만나 공항으로 이동하며 오늘 아침 일화를 풀어내고 출발시간에 맞춰 겨우 도착해 비행기 탑승을 마치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엄마   / 라거  오프

이번 서울행은 엄마와의 시간으로 꽉 채우고 싶어서 비행기 안전벨트를 매며 속으로 스위치를 켰다.

차로 5분 거리에 살면서도 엄마와의 찐한 퀄리티 타임을 즐기지 못한 지 오래였다. 매일 통화하고 자주 보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면 늘 엄마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으니.

비행기를 타고 가며 엄마랑 그간 있었던 일, 서울 가면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음식 등을 이야기했다.

예전 같지 않은 욕구와 체력에 엄마도 나도 매년 놀라지만 올해는 유독 지쳤고,

평소 같으면 밤까지 이곳저곳 더 둘러보았을 텐데 다음날 아침 12시간 이상 금식을 요하는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더현대 서울에 갔다가 해도 지지 않은 시간에 호텔에 돌아와 푹 쉬었다.


곤히 잠든 엄마 옆에서 누워 ‘휴식’과 관련된 책을 둘러보다가 <구가야 아키라의 ‘최고의 휴식’>이라는 책을 읽었다.

하루 종일 가만히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피곤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스스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지 않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궁극적인 휴식은 단순히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뇌를 바꿔서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마음의 근력을 갖는 것이 ‘최고의 휴식’의 진짜 목적이라는 부분에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와, 그동안 나는 정말 온오프 스위치 작동법을 모르고 있었구나.

몸만 쉬고 뇌는 쉬지 못해서 이토록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허덕이고 있었구나.

무엇을 해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과 머리가 제각각 따로 놀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며 전전긍긍 살았구나 싶어서.


짧은 시간에 책 한 권을 읽어내고 한숨 돌리며 다짐했다.

앞으로는 최대한 ‘지금 여기’에 제대로 집중하며 살아야지. 나의 모든 순간에 애정을 담아 좀 더 열정을 다해야지.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며 내 시간에는 나에게, 가족과의 시간에는 가족에게.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나 스스로 깨어있는 일상을 살아가야겠다고.


그날 밤 나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온전히 나와 엄마에게 집중했다. 그 시간에 힘을 보탰다.

첫날은 엄마와 함께하면서도 아이들을 걱정하고 놀면서도 왠지 모를 부채감에 휩싸여 힘들었는데,

둘째 날부터 지금 여기에 집중해보니 엄마와의 시간이 유독 평온하면서도 잔잔하게 아름답게 흘렀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순간까지 엄마와 찐한 데이트를 마치고 귀가해 잠든 아이들 옆에 누우며 다시 스위치를 켠다.

“라거 맘 온 / 엄마 딸 오프”


매 순간 스위치를 자유롭게 켜고 끄며 ‘지금 여기’에 집중하여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닫고 온 이번 일정은 정말 최고의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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