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주부 7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칼질은 서툴다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 대중공양(석가탄신일을 맞아 절에 온 대중들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절에 가서 무생채를 썰다가 내 왼손 세 번째 손톱까지 썰어버렸다.
피만 보면 기절하는 나인데, 살짝 베인 게 아니라 손톱을 반이상 날려버린 나는 뚝뚝 떨어지는 피에 놀라 애타게 남편을 불렀다.
“오빠가 아아아아아 아”
생각보다 심한 상처에 남편도 놀라 서둘러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너무 놀란 나는 사십여분의 이동시간(제주는 이게 참 너무 슬프다. 열악한 의료현실) 동안 숨도 잘 못 쉬고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반쯤 정신을 놓은 채 응급실에 도착.
연휴기간이라 유독 많은 응급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출혈이 심하고 손톱 밑이 잘린 경우라 일반외과의사가 아닌 정형외과 의사가 봐야 한대서 처치실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세명의 의사를 거쳐 겨우 정형외과 의사의 도움으로 손끝과 손톱을 꿰매었다.
난 사실 칼에 살짝 베인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손톱을 포 뜨셨냐"는 의사의 농담(같지 않은 농담)에 웃픈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손끝 절단의 경우 모세혈관이 많아 출혈도 크고 혈관을 모두 잇지 못해서 괴사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실밥 풀 때까지 물 절대 닿으면 안 되고, 항생제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겁주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마취도 풀리지 않은 퉁퉁부은 손가락을 붕대로 친친 감고 돌아와서 한 이틀은 세수도 목욕도 스스로 하지 못할 만큼 너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라, 손에 물이 안 닿게 일상을 살아내기란 너무 힘들었다.
주말엔 남편에게 징징거리며 핑계 삼아 쉬었지만 남편의 출근과 동시에 오른손 슈퍼우먼이 되었다.
고무장갑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붕대를 감아놓으니 왼손을 비닐팩으로 감싸고 고무줄로 고정시킨 뒤 최대한 오른손만으로 설거지, 빨래, 청소, 아이들 목욕이며 식사 준비까지 모두 해냈다.
다친 손이 왼손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오른손잡이라서 얼마나 고마운가.
근데 정말 고작 손가락 하나 다친 건데 일상이 이토록 불편해질 줄이야…
오른손이 하는 모든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일도 쉬울 줄 알았는데 너무 어려웠다.
너무도 당연했던 모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고 뭘 해도 자연스럽게 두 손이 모아지는 게 너무도 신기했다.
손끝이라 만만하게 봤던 통증은 어마 무시했고, 항생제에 진통제까지 매 끼니 8알씩 챙겨 먹으며 손가락 괴사보다 간이 먼저 썩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절절하게 느꼈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찾아간 외래진료에서 만난 새로운 의사는 손끝 괴사와 재수술을 운운하며 나를 울부짖게 했고, 다음 주 재진료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했지만, 덕분에 매일 오늘 하루 더 신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함의 의의를 덧붙여 주었다.
문득 결혼 직전까지 엄마 손길 듬뿍 받으며 살다가 만나자마자 결혼하겠다며 석 달만에 결혼 날짜를 잡고 온 딸에게 끼니마다 초단기 신부수업을 해주던 엄마가 떠올랐다.
“칼질도 못하고 반찬도 하나 못하면서 시집가서 어떻게 할 거야? 밥은 먹고살겠어?” 라며 걱정하는 엄마께 “괜찮아. 엄마. 신혼집 첫 조리도구로 곰돌이 채칼 살 거야!”라며 자신했던 나.
뭐든지 쉽고 간단하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즐기며 살아가려던 내가 요즘 너무 힘을 주고 열심히 살았나 보다.
늘 다짐하듯 힘 좀 빼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즐기며 살아야지.
당분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느라 좀 고단하겠지만, 그만큼 조금 부족해도 아쉬워도 괜찮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덕분에 모든 것에 시간도 노력도 평소보다 많이 들이게 됐지만, 그만큼의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아 다행이다.
모두들! 칼 조심! 합시다. 복세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