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람 Jan 26. 2023

자전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엄마, 나 초등학교 가면 자전거 사주기로 했잖아, 이번엔 꼭 사줘! 핑크색으로! 바구니도 달린 걸로. 그래야 핸드폰이랑 가방 같은 거 넣을 수 있으니까. 응? 꼭 사줘, 아주 예쁜 거! “


또 시작이다. 자전거타령. 한동안 잠잠하다 생각했는데…


집이 동산진 곳에 있어서 자전거를 사줘도 도저히 집 근처에서는 탈 수 없는 구조라 자전거 사주기를 미루고 미뤄왔었다.

물려받은 자전거로 공원에서 네발자전거 까지는 태웠는데, 그사이 커버린 아이에게 맞는 사이즈 자전거로 바꿔주려니 생각할게 많은 부모는 또 미루기 대장이 되었다.

접이식 자전거를 사서 공원에 가서 태워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빠 있는 주말에만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접이식 자전거라고 한들 두 아이 몫으로 하나씩 사준다 하면…

과연 두대의 자전거가 우리 차 트렁크에 들어갈까? 365일 트렁크에 넣어두고 쓸 수도 없는데, 우리 집 현관에는 자전거 꺼내 놓을 공간도 없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뤘는데, 작년 이맘때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자전거를 원했던 첫째.

외할머니가 사주라고 돈까지 주셨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어 아이를 어르고 달래 결국 그 돈으로 책상을 샀더랬다.


그 무렵 동네 친구들은 하나둘 주차장에서라도 태운다며 하나둘 자전거를 사기 시작했고,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에게 “주차장에서 자전거 타는 건 몹시 위험한 일이야! 우리는 나중에 큰 차로 바꾸면 자전거 꼭 사서 공원에서 안전하게 타자!”라고 했는데 자전거는커녕 자동차도 못 바꾸는 신세가 되었다.

그동안 반도체며 세계 경제며 남얘긴 줄 알았는데 숨결까지 와닿는 거리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도대체 차는 언제 나와? 애먼 자동차 딜러에게 닦달하다 못해 이젠 포기상태에 이르렀는데, 또 아이의 자전거타령이 시작되니, 마음이 급해졌다.

더 크기 전에 아이들 자전거는 배워줘야 하는데, 도대체 자전거를 어떻게 사주지?


난 어릴 때 아빠한테 자전거를 배웠다.

어떤 계기로 아빠한테 자전거를 배우게 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물려받은 자전거를 손수 고치고 계셨던 아빠의 모습과 아빠와 함께 넘어지고 울고 웃으며 자전거 타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내 딸처럼 “핑크색! 바구니 달린 예쁜 자전거!”를 외쳤던 것 같은데,  그때 아빠가 나를 위해 자전거에 페인트 칠해주셨던 것까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마음에 드는 예쁜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기억이 되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집만큼이나 친정집도 동산진 곳에 위치해 자전거 타기엔 참 위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우리 삼 남매에게 자전거를 배워주셨다.

매일 장사하느라 바빴던 아빠가 우리 삼 남매를 위해 내어 주신 아빠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할애해 배운 자전거라 그런지 참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자전거 사주는 걸 미루고 있는 건 다 핑계였다.

그동안 우리는 왜 수많은 핑계에 기대어 미뤄왔던 걸까?

우리가 원하는 건 아이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소유함으로써 완성되는 목표가 아니라, 자전거를 소유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는 목표였던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건 그저 예쁜 핑크색 자전거 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목표는 아이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는 부분에서 너무 놀랐다. 그 딱 하나의 목표만 생각하면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었음을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문제가 쉽고 가볍게 다가오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을 알게 되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해결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마리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게 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

이게 정말 글쓰기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저 예쁜 핑크색 자전거 사줄 방법 말고,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제대로 배워줄 방법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우선, 날이 좀 따스워지면 자전거 대여해 주는 공원이라도 찾아가봐지.



작가의 이전글 아이의 치아교정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