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초음파검사를 기다리며
얼마 전 유방초음파검사를 예약했다.
5년 전 엄마의 유방암수술을 계기로 ‘정기검진 꼭 받아야지’ 마음은 먹었지만 5년간 한 번도 검사를 받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검사했는데 진짜 아프면 어떡해? 죽을병이면? 난 무서워서 못하겠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
그동안 엄마도 아팠고, 아이들은 어렸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았달까? 잠깐이라도 놓을 수 없는 나의 필요를 핑계로 자꾸만 미루고 미루다 보니 벌써 5년이다.
그러다 작년 말에는 정말 이젠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빠서 나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고, 아프면 그냥 약 먹고 참고 견디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았는데, 이러다가 정말 크게 아프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이 더 커졌다.
만약 내가 조만간 죽는다 치면, 나는 무얼 아쉬워할까?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딱히 아쉬울 게 없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100가지도 넘게 리스트업 해 두었지만, 그런 것쯤이야 어차피 죽으면 소용없지 싶은 생각에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딱 하나. 아이들에게 엄마 없는 삶을 남겨주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컸다.
서른일곱이 되어도 힘들 때 가장 생각나는 건 엄마고, 아직도 나는 엄마가 늘 필요한데, 아이들에게 더 좋고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지 못할지언정, 엄마의 부재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나고 든든한 버팀목으로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었다.
애들이 조금만 크면, 조금만 더 크면 나의 필요가 좀 덜할 쯤이 되면 아파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때만 기다렸는데 어찌 된 게 애가 크면 클수록 엄마의 필요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걸음마를 겨우 뗀 애가 잘 걷기라도 하면, 울기만 하던 애가 제대로 말이라도 하면, 글자라도 알면, 혼자 밥 먹고, 혼자 목욕이라도 하면, 하다 못해 초등학교만 가도? 아니,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라도, 직장을 갖고 먹고살 정도까지라도, 아니 결혼하는 것도 봐야 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힘들면 내가 애라도 봐줘야 할 텐데… 하다 보니 이러다간 정말 죽을 때까지 검사조차 못해볼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이들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애미의 몫을 해내는 거라 생각하는 내가 그러려면 그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만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최선이 될 텐데,
만약 아프더라도 조금이라도 일찍 알면, 쉽게 고칠 텐데, 미루다 가는 정말 손댈 수 없이 너무 늦어버릴 것 만 같아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알아보다가 지난달에 우연히 친구가 검사 예약을 했다는 소식에 바로 예약했다.
예약이 밀려있어 검사는 2월 초에나 가능하다길래 괘념치 않았는데, 막상 예약하고 나니 무의식 속에서도 불안감이 커졌는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어느 날은 차가 뒤집히고, 어느 날은 벌레가 달려들어 나를 쥐어뜯고, 어느 날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깨고 나면 오만 잡생각이 드는 악몽들…
그래서 아침마다 눈뜨면 꿈해몽을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대체로 하려던 일을 그르치거나 구설수에 오른다는 해몽이었다.
불안감에 휩싸여 여러 차례 말하자, 남편이
“그거 개꿈 같아. 당신 요즘 뭘 하려는 일이 없잖아. 사업을 하는 것도,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뭔가 이루려는 것도 딱히 없고, 당신 요즘 사람도 잘 안 만나서 구설수에 오를만한 일도 없는데 뭐가 문제야? 그냥 불안해서 그런 거니까 마음 편히 가져” (뭐지? 뭔가 맥이는 느낌인데 묘하게 설득력 있네)
아.. 그러네… 나 요즘 너무 평온한 삶을 살았네. 한동안 걱정거리랄 것도 없을 만큼 너무 평온한 상태였다. 살다 보면 이것저것 문제로 여기면 문제가 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뭐든지 닥치면 닥치는 대로 하나씩 해결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쿨한 척 넘기기 시작하니 평온하지만은 않은 나의 일상이 평온해졌다. 평온하다 믿게 됐다.
역시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각한 대로 믿고, 믿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 결국 모든 건 정해진 운명대로 이어지게 될 거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며 도망친들 운명은 나를 정해진 운명대로 안내할 것이라 믿는 나는 운명론자다. 그리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되,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을 다하는 게 나다.
그 정해진 운명이 아마 나는 ‘그 어떤 시련을 겪고도 이겨내는 멋진 운명’일 거라 믿으니까.
어떤 운명이 나를 기다리든, 나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되,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을 다해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고, 만약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는 또 그에 따라 잘 이겨내며 남은 시간을 잘 보낼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모두 유한한 존재가 아닌가. 모두가 시한부인 것을.
검사하기 전이라 더 불안하고 더 감성적이 되는 나지만, 막상 검사하고 나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될 나를 믿는다.
그저 오늘 하루, 지금 여기에서 나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
평소처럼. 오늘만 살자.
그토록 걱정했던 검사의 날이 오늘이고, 오늘의 나를 위해 나에게 거는 주문.
괜찮을 거다. 뭐가 됐든 나는 잘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에겐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까.
그 안에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