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잠자고 일어나면 수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이었으면 좋겠어. 나 진짜 교정하는 거 너무 무섭고 싫어.”
라며 걱정과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루는 딸아이를 달래며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지금 꼭 해야만 하나? 꼭 지금이어야 하는 걸까?”
선천적으로 치아가 좋지 않았던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스트레스였다.
두 개의 앞니 사이에 자라지 않는 작은 치아가 있어 앞니가 벌어져있고, 윗니와 아랫니가 맞닿지 않아 라면 면발조차 맘 편히 끊어 먹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 교정을 할까 고민했는데, 과정설명을 듣고 바로 포기했다.
교정을 하려면 잇몸 속 치아를 뽑아야 하는데, 발치를 위해선 입천장을 절개해야 한다고…
그리고 교정 후에도 교정장치를 빼면 다시 제자리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교정장치를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땐 ‘아니 뭐, 연예인 될 것도 아닌데, 먹고사는데 지장 없으면 되지, 예쁜 치아가 무슨 소용이야?’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치과에서 나왔다.
그 후로 지금까지 사는데 딱히 지장은 없으나, 뭘 끊어 먹어야 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고 늘 스트레스였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교정하기엔 ‘결혼하고 애까지 다 낳았는데 이제 와서 뭘?’ 하는 생각이 들어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지만, 우리 아이들만큼은 치아교정이 필요하면 꼭 미리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유치는 어차피 빠지는 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아이들 치아관리에 열정적이었다.
양치 한 번 제대로 안 해주고 초콜릿이며 캐러멜이며 온갖 단음식을 달고 살아도 충치 하나 없이 멀쩡하다는 여느 집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좋은 치아를 갖고 태어나 관리의 문제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달랐다.
아홉 살 정도까지는 눕혀놓고 양치를 시켜주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을 들어서, 매일 밤 아이 둘을 바닥에 눕히고 부부가 나란히 앉아 아이들 양치시켜주는 게 하루일과의 마무리였다.
전동칫솔에 어금니칫솔, 치실에 구강청결제까지 마무리를 한다는 우리 부부를 보며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그나마 이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우리 아이들의 치아상태다.
그렇게 꾸준히 관리해서 아이들의 치아상태는 많이 양호한 편이었지만, 교정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앞니가 많이 벌어지고 비틀어져 있어서 지금 교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는 치아들이 모두 부정교합이 될 텐데, 지금 교정하면 1년 이내, 나중에 교정하면 더 많은 기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혹여나 나와 같이 앞니 사이에 자라지 않는 치아가 있어 그런 건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라서 그나마 수월하게 교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고, 나중에 하는 게 더 좋을지도(아이가 스스로 자기 치아를 관리할 수 있을 때) 혹은 아예 하지 않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결국 하기로 했다.
이왕 하는 거 그럼 언제? 를 또 고민하다가, 방학시즌에 시작해야 아파도 불편해도 좀 쉬어갈 수 있을 것 같아 1학년 겨울방학으로 일정을 잡았다.
연말부터 디데이를 잡아놓고 아이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교정을 하면 먹지 못할 수많은 음식에 대한 한을 미리 풀어주고자 노력도 많이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날이 다가왔고, 지난밤 아이는 두려움에 잠 못 이루고 당일 날 아침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극도의 긴장감을 안고 치과에 도착했다.
교정 전 마지막 상담을 하는 동안 상담실 문 밖에서 기다리는 딸아이의 초조함이 그대로 전해져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코디네이터샘이 웃으며 우리를 달랬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만큼 많이 아프지도 않고, 생각보다 아이들이 더 잘 적응한다고, 엄마는 그냥 아이의 적응을 기다려주면 된다고 했다. 정말?
믿음반 의심반으로 기다린 한 시간가량 소요된다던 시술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의젓하게 시술을 마친 아이를 보며 안심했다.
시술을 마치고 거울을 보며 낯선 교정장치와의 인사 후,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점심을 먹고 그동안 아껴두었던 키즈카페 찬스로 기쁨에 흠뻑 취할 정도의 보상을 남겨주고 돌아왔다.
치과의사의 예상대로 저녁즈음부터 통증을 호소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잘 참아냈다.
무언갈 먹을 때마다 불편하고 아프다고 하더니 하룻밤 만에 어떤걸 먹을 수 있고 못먹을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나 빠른 적응. 아이여서 또 가능한거겠지. 그리고 또 불편한게 생겨도 어느새 또 적응하고 익숙해지겠지.
이제 엄마는 기다리고 살펴보고 도와주는 일만 남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정말 엄마가 무언갈 해주는 것보다 그저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일이 더 도움이 되고 더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이번 교정을 계기로 아이도 나도 또 한 뼘 또 자라는 걸 느낀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엄마도 자란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었을 수많은 경험과 성장을 준 아이들에게 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