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더라?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7년 전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첫째의 어린이집 하원길에 우연히 같이 걸어 내려오다가 만난 같은 아파트, 같은 동, 바로 옆라인에 산다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던 그날이.
첫째 낳고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4개월 했었다.
친정식구들부터 동네 어른들, 친구들까지 오가며 애 하나를 봐줬던 통에 외로울 틈도 힘들 틈도 없었던 시기를 지나고 한 시간 거리의 우리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쯤 됐나?
도저히 혼자서 애 보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밤마다 퇴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엄마 곁에서 살고 싶다던 나를 다시 엄마 곁으로 데려다준 남편.
얼떨결에 엄마가 되었지만 내 엄마가 그립고, 내 엄마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나고 자란 동네였지만, 결혼 전과 결혼 후 아니 출산 후의 이곳은 전혀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애 하나 낳은 것뿐인데 이토록 다른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했고, 예전처럼 여유롭지 못했던 그 시절 나는 엄마랑 가끔 만나는 친구 아니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지냈다.
하루종일 내 아이만 바라보고 퇴근하는 남편만 기다리며 살았다.
엄마가 된다는 건 그런 거였다. 익숙했던 모든 것과 이별하고 다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천천히 엄마가 되어가던 중, 둘째가 찾아왔고, 돌쟁이 첫째와 뱃속 둘째 덕분에 극도의 우울감과 외로움을 겪고 있을 때 그녀를 만났다.
굳게 닫힌 아파트 현관문들 사이에서 참 가까운데 멀게만 느껴졌던 이웃과의 첫 만남이라 들떠서 시간 되면 차 한잔 마시러 놀러 오십사 했던 인사가 그녀에게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고 한다.
몹시 힘들어 보이는(그 시절 나는 그렇게 힘들어 보였나 보다. 지금은 좀 나아졌는가?) 젊은 애엄마가 인사를 건네며 차 한잔 마시러 오라는 말이 자꾸 밟혀서 물어물어 내 전화번호를 받아 연락을 해 준 그녀.
그날을 계기로 우리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었다.
옆라인 그녀의 아들은 어느새 옆라인오빠로 우리 첫째의 오빠이자, 뱃속에서부터 함께한 우리 둘째의 형이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불어도 지하주차장으로 이어진 통로를 통해 우리는 5분 거리의 친정, 시댁의 가족들보다도 더 자주 만날 때가 있을 만큼 가깝게 일상의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했다.
계절마다 함께했던 공원봄소풍, 여름물놀이, 가을산책, 한겨울 눈썰매놀이까지 아이들과의 추억도 많았고, 아이들 없이 자유롭게 우리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날도 참 많았다.
어떤 날을 웃고 어떤 날은 울면서 7년이라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 겹겹이 쌓였다.
나이차는 많았지만, 친구처럼 언니처럼 엄마처럼 늘 내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준 그녀.
아이들이 자라고 시간이 오래 흘러도 우리는 지금처럼 오래오래 즐겁게 함께 늙어가자며 약속했는데, 이제 그녀가 제주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고 한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로 너무 당황스러웠다.
만날 때마다 언니 가지 마 그리울거야 징징거리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그녀가 그곳에서 잘 적응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고 또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게 되었지만, 멀리 있어도 지금처럼 의지하고 애정하고 그리워하며 오래오래 함께하면 되지 않겠나.
말처럼 쉽지 않은 이별 앞에서 애써 아쉬움을 감추고 웃으며 보내줘야지.
잘 가요, 언니!
가서도 밥 잘 챙겨 먹고 아프지 말고 심심하면 언제든지 전화해요.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글로써 말로써 표현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는 차차 또 나누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