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람 Sep 09. 2021

오니의 첫 피아노


지난달 중순.

사상 최대 코로나 확진자수를 기록하며 다시 가정보육이 시작됐다.

작년 봄 집콕기 이후 이렇게 장기간 공포에 떨며 집콕기를 겪은 건 오랜만이었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해 집콕기마다 집을 새로 배치하고 다양한 집콕 아이템을 들이며 최적의 집콕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사이 아이들은 컸고, 나는 집콕 적응 레벨이 3쯤 더 높아졌다.

그래서 이제 애둘과 함께하는 집콕기가 예전만큼 죽을 것 같이 힘들지는 않았다.

물론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뺏겨 심신이 고단하고 가끔 우울감에 빠져드는 것을 제외하면.


그런데 이번 집콕기는 조금 길었다.

나름 적응해서 우리만의 루틴도 만들고 집에서도 재미나게 보내는 방법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24시간이 내내 행복하다면 거짓말.


그렇게 창살 없는 감옥에서 하루하루 늘어가는 가정보육에 지친 어느 날.

7살 딸아이가 다가와 "엄마, 고양이춤은 어떻게 치는 거야? ㅇㅇ이는 발레학원에서 피아노로 고양이춤을 혼자 다 치던데 나도 좀 가르쳐줘" 라며 피아노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작년 봄. 우리는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피아노를 구매했다.

한참 유행이었던 나라에서 준 무엇!!! 이라며 기록할만한 아이템을 찾다가 언젠가 사줄 테지만 목돈이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이게 딱이었다.

그리고 너무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닌 탓에 정작 즐기며 배워야 할 시기에 지겨워 그만뒀던 나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사교육은 곧 가성비다!라는 마인드로 단기간에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적기에 보내겠다는 다짐으로 우선 피아노와 친해지기라도 하라며 피아노를 들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예체능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며 전공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늘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섬에서 나고자란 우리 부부에게 타는 목마름으로 다가오는 것은 경험치였으니까.

무엇보다 예술의 일상화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즐기며 사는 삶의 재미는 예술에서 시작된다 생각하고,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보고 듣고 느끼고 표현하며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취미를 만들어주고 싶달까.


사실 나도 악보를 보고 띄엄띄엄 어설프게 흉내 내는 정도의 피아노 실력이라 제대로 가르치진 못하고,

시간 날 때마다 피아노 연주 영상을 보여주거나 좋아하는 동요를 계이름 대신 손가락 번호로 멜로디라도 따라 칠 수 있도록 가르쳐 이제 겨우 오른손으로 '나비야, 비행기, 작은 별' 세곡 정도 칠 수 있는 애가 갑자기 고양이춤?


처음엔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예쁘고 반가워서 흔쾌히 허락했는데,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아이에게 제대로 된 전문지식도 없이 피아노를 배워주기란 너무 힘들었다.

두어 마디씩 끊어치는 걸 보여주고 따라 치도록 했더니 손가락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열댓 번씩 가르쳐줘도 따라 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속으로 참을 인을 얼마나 새겼는지.

배우는 아이보다 가르치는 내가. 내 화를 못 이겨 제발 그만하자고 그냥 선생님한테 가서 배우라며 포기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포기하지 않고 밤낮없이 연습하더니 열흘만에 고양이춤 완곡 연주에 성공했다.

박자감이 좀 어긋나고 가끔 틀리는 구간이 있을지라도 스스로 고양이춤 연주에 성공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신나 하던 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와! 이게 가능한 거구나! 진짜 가르친 나조차도 놀라운 일이었다.

재주는 타고나는 거라 이미 태어난 아이를 다시 낳아줄 순 없지만(열정에 비해 몸이 잘 안 따라줘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우리 딸. 그래도 노력하는 너의 모습은 정말 멋져!)

이번 고양이춤 완곡 연주의 결실은 딸아이와 나의 인내와 노력의 결과라 생각하니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밤낮없이 연습하며 결국엔 해낸 딸에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르친 나에게도 아낌없는 칭찬을 보낸다.


나는 "좋은 첫인상을 남기는 데 두 번째 기회란 없다"라는 미국 속담을 늘 마음에 새기며.

아이의 경험에 있어 첫인상을 잘 남겨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공부도 취미도 음식도 사람도 첫인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새로운 곳에 가거나 새로운 경험을 할 때 쉽고 편하게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했다.

나의 첫 피아노는 선생님한테 높은 음자리표를 못 그려서 혼나고 자세가 불량해서 자로 손가락을 맞으며 배웠던 안 좋은 첫인상이었는데.

내 딸아이의 피아노 첫 경험은 그래도 고양이춤으로 즐겁고 신나게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아이가 어떻게 추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양이춤을 치거나 들을 때마다 엄마한테 배운 첫 양손 연주였다고 기억해주겠지.

내가 자전거를 볼 때마다 아빠가 가르쳐준 두 발 자전거를 떠올리고, 빨래를 개킬 때마다 엄마가 가르쳐준 걸 떠올리는 것처럼.  

아이의 첫 선생님은 늘 부모라는 말을 깊이 새기며 조금 더 정 많고 자애로운 엄마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요즘 마음 어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