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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Sep 16. 2021

저 오늘은 좀 쉴게요.

나를 보호하고 남을 배려하는 거절하기.

길고 긴 가정보육을 마치고 드디어 나만의 시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왔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원한 뒤부터 하원 하기 직전까지의 달콤 짜릿한 시간.

육아맘에게 진정한 퇴근은 평일 낮시간이 아닐까.

그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

나는  시간이 너무도 그리웠다.



가정 보육하는 내내 다시 내 시간이 주어진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매일 생각했다.

우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오롯이 혼자서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동네 친한 언니가 연락이 왔다.

오랜만의 티타임 초대였다.  다른 지인도 오기로 했는데,  보람씨는 사람 만나는  좋아하니까 함께하자고.

잠깐이었지만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는걸 정말 좋아하지만 오늘은 쉬고 싶었다.

그간 아이들에게 시달리느라 너무 지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평소 같았으면 내 마음 꾹꾹 누르고 만나러 갔을 게 뻔했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아뇨, 언니. 정말 고맙지만 오늘은 저 좀 쉴게요."


나의 대답에 언니는 평소와 다른 내가 좀 놀랍다는 듯이 신기해했지만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그동안 이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걸 좋아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자영업을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지내왔는데,

제주라는 섬 지역 특성상 한 다리 건너면 다 알정도로 가까운 관계의 연속이라 나의 과거는 늘 나의 생각과 감정보다는 남들의 보는 눈과 듣는 귀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하나 좀 힘들면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그런데 코로나 이후 내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 초창기 문득 읽은 책에서 시작된 나의 궁금증과 불안감은 그 이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불안감에 휩싸여 온,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의 공포심을 전하고 위로받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스스로 어느 정도 공포심을 자제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 내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부의 자극과 환경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결국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가정보육이 길어지고 나만의 시간이 줄어들어 불편함을 느낄 때쯤 새벽 기상과 글쓰기를 시작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새벽 기상'이 결국은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새벽 기상을 해본 사람들만이 알겠지.

혹자는 나의 처절한 몸부림을 비웃고 뒷담화하는  알았지만 나름 내게 맞게  꾸려나갔다.

그리고 길어진 가정보육에 체력이 뒷받침하지 못해 지금은 간헐적 새벽 기상이라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게을러진 나의 모습을 합리화하고 있지만.

이 시기 처절했던 나의 몸부림이 나를 참 많이 성장하게 한 것 같다.


평생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나만의 시간 갖기는 정말 1년 동안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내 시간을 가지면서 그 시간의 소중함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나의 이 소중한 시간을 방해받기 싫어서 나의 시공간을 침범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좀 더 지나니 나의 시간만큼 타인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나를 보호하고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나를 가장 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불편하게 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힘들 때 나는 어떻게 이를 이겨내는지처럼

나의 작고 사소한 것부터 크게는 나와 관련된 주변까지 한 번쯤 깊게 고민하고 생각해보고, 기록해두는 건 정말 좋은 것 같다. 기록 또 기록.

뜬구름처럼 떠다니는 나의 실체를 정의하고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나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보이고 조금 더 가볍고 쿨해질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제 조금씩은 나를 위해 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앞으로 또 많은 시간과 관계가 나를 변화시키겠지.

나는 앞으로의 내가 참 기대된다. 내일의 나는 또 어떨까.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오늘은 이해 안 되는 누군가의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그의 오늘을 위로하고 응원해줄 수 있기를.

나에게도 남에게도 오늘 조금 더 너그럽게 애정을 가지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여유를 지닌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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