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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Sep 23. 2021

엄마, 엄마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어느 날 오니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다시 되물었다.

"엄마? 글쎄? 오니는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어?"라고 물었더니.

"응. 나 5살로 돌아가고 싶어. 다섯 살 때는 엄마가 뭐든지 다 해주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았는데… 나도 무빈이처럼 다섯 살 하고 싶다." 란다.


저런... 일곱 살 예비 초등학생 오니는 요즘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고작 일곱 살에 다섯 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너무 재촉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니를 꼭 끌어안아주며  "요즘 일곱 살 누나 되느라 힘들었구나, 그런데 조금 더 천천히 해도 괜찮아.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 엄마는 늘 오니 편이야."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생각해보니 학교 갈 준비로 늘 엄마 도움을 받아했었던 등원 준비며 자기 주변 정리하기, 용변처리, 한글 떼기 등 일곱 살과 여덟 살의 경계는 생각보다 뚜렷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아이를 닦달하고 있었나 보다. 

"일곱 살 누나니까, 내년에 학교 가니까."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고 부담을 줬구나.



엄마가 미안해. 더 기다려주지 못해서. 


결혼 후 자녀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허니문 베이비로 우리에게 온 오니는 

임신 8개월까지 폭풍 입덧으로 내 체중이 -13kg이나 빠졌다가 막달에 폭풍 먹성으로 20킬로 넘게 늘면서 임신중독증과 임신성 고혈압으로 한 달이나 일찍 응급수술로 조산한 데다 11월 말 생으로 또래보다 유독 작고 느렸다.

그리고 돌잔치 날 둘째 비니의 임신을 확인한 후부터 뭘 알고 그러는 것처럼

여섯 살 후반까지 매달 한번 이상 호흡기 알레르기성, 면역력 관련 질환으로(폐렴, 기관지염, 농가진, 등) 입원하며 가족들의 걱정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늘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고, 늘 행복하고 즐겁게 살면 좋겠다며 신나게 놀고 또 놀리다 보니 어느새 일곱 살이 되었다.


주변 선배 엄마들이 일곱살 되면 급해지니 미리미리 준비하라던 말을 흘려듣고 진짜 놀고 또 놀았는데 막상 일곱 살이 되니 아이는 똑같은데 내 마음만 갑자기 급해졌다.

'초등학생 입학 뭐 별거겠어? 때 되면 다 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때가 됐는데 다 못하는 아이를 보니 걱정이 됐다. 

늦기 전에 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준비할게 너무 많게 느껴졌다.


걱정의 시작은 한글, 수 떼기였는데 이것만 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본생활습관부터 자리에 앉아 수업 듣기,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 성교육 등 관심 갖고 준비해야지 마음먹으니 걱정거리가 날로 늘었다.


진짜 아이의 24시간을 풀케어하던 때가 오히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던 것 같다.

선배 엄마들 말처럼 진짜 점점 몸은 편해져도 머리가 마음이 힘들어지는 시기가 올 거라던 말이 다시 들린다. 


다들 자기 몫을 갖고 태어나고, 때가 되면 다 알아서 한다며 걱정하지 말랐지만.

엄마 마음이 뭐 그런가. 하나부터 열 가지 걱정이 오만가지는 넘는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일 테지만, 지금 당장 걱정이고 불안한 건 별 수 없었다.

잘해도 내 공은 아니지만, 못하면 왠지 다 내 탓인 것만 같아 늘 맘 졸이는 엄마의 마음.

나는 쿨한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쿨은 무슨. 웜 하다못해 핫하다 핫해.


이렇게 핫해질 때면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내게 걱정 말라며,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독인다.

오니도 우리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우리가 처음 가졌던 생각처럼 건강하고 밝게 자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며.

지금처럼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고 하루하루 재밌게 보내다 보면 어느새 잘 자라나 있을 거라 믿는다며.


가끔 보면 관심 없는 듯, 잘 모르는 듯 하지만 오히려 큰 그림을 그리는 건 아빠일지도.

엄마인 내가 너무 작은 것에 매달려 끙끙거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 남편 말이 맞다. 너무 애달프지 말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자. 나부터 조금 더 여유를 갖자 마음먹어본다.


그리고 내가 돌아가고 싶은 때를 회상해본다.

나도 아무 걱정 없이 하고픈대로 다 할 수 있었던 다섯 살?

대학시절 다녀온 라오스 해외봉사 중 점심 먹고 즐기던 테라스의 휴식시간? 

지금은 남편이 되어버린 전 남자 친구와의 알콩달콩 연애시절? 우리 둘만의 여행? 

내 인생 황금기라 칭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조리원 천국?


아니 아니. 수많은 즐겁고 행복한 때를 회상해보아도 콕찝어 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다.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는 질문에도 콕찝어 대답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매일의 기쁨과  순간의 행복이 가득한 지금의 내가 제일 좋다.


이제 긴 연휴를 마치고 오랜만에 등원해서 어색하고 불안하니 세시에 데리러 와 줄 수 있냐던 오니의 소망을 들어주러 가야겠다.

평소보다 일찍 하원 해서 기분 좋은 오니 손을 잡고 산책하며 엄마는 돌아가고 싶은 때 없이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고, 매우 행복하다고.

우리 오니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매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어야지.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우리만의 스타일로. 우리만의 감성으로 오늘도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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