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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Sep 02. 2021

요즘 마음 어때요?


오랜만에 혼자 있는 집.

정말 조용하다. 세탁기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우리집. 

매우 평화롭다. 아무것도 안해도 좋다. 그래 이게 바로 행복이지.

눈 앞에 치워야할 것들이 산더미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길지 않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지금 오롯이 혼자있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내일은 제사음식 하러가야 해서 오늘은 온전히 내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랐는데 역시나.

최근에 갑자기 패널불량으로 티비를 고쳤는데 어제저녁부터 에어컨에 에러메시지가 뜨며 찬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맙소사. 요즘 제주는 계속 우기마냥 다음주까지 계속 비소식이 있는데 이시점에 에어컨고장이라니.

신혼살림으로 들였던 가전인데, 쌩쌩하게 잘만 돌아가다가 결혼 6년차가 되니 나 좀 봐주라고 에러메시지를 보내온다.


요즘 내가 딱 그랬다. 

쌩쌩하게 잘 돌아가다가 '지금 나 안봐주면 폭발한다!!!' 라고 온몸에서 에러메시지를 보내온다.

갑자기 이유모를 짜증이 올라오고, 뭘 먹든지 소화가 잘 안되고, 사춘기소녀마냥 얼굴에 트러블 투성이다. 그리고 뭉친어깨와 두통으로 파스와 진통제 없으면 잠 못는 나날들.


뜨거운 여름이 가고 벌써 9월. 

2주면 끝날 줄 알았던 가정보육이 자그마치 2주나 늘었다. 

늘 그렇듯 이번 가정보육도 준비없이 시작됐지만 그래도 코로나 초창기 가정보육때보다 애들도 크고 집콕스킬도 늘어서 꽤 자신있었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아 오늘 내가 무얼 먹었는지 어제 내가 뭘 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왜 날짜 하나하나 엑스표시를 하며 보내는지 새삼 깨닫는 2주였지만.

2주동안 나는 엄마로 선생님으로 조리사님으로 친구로 언니로 누나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며 아이들과  나름 재밌게 잘 지냈다.


그런데 어린이집 휴원연장 안내를 받고 진이 빠져버렸다.

관할 부처가 달라 어린이집은 휴원, 유치원은 정상등원인데, 맞벌이 가정에 한해 긴급보육을 하고 있다고.

첫째는 유치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걸까.

최근 확진자수가 대폭 줄었고, 대체로 등원하는 분위기니 그냥 등원시키라는 주변사람들과 그럼에도 아직 거리두기는 4단계고 안심할 수 없으니 계속 가정보육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나만 안보낸다고 안정될 것 같은 분위기도 아니고, 집에선 내내 규칙없이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일상을 보내다보니 내년 초등학교 입학할 오니가 걱정이 됐다.

그렇다고 오니만 등원하고 비니는 가정보육하는건 무슨의미인가 싶고.

이렇게 계속 쉬다간 등원자체가 불가능해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어떤 선택도 내가 해야하고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

모든 선택에는 자유와 책임이 공존한다지만 이 모든걸 결정하는건 내몫이라는게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 그냥 도망가고싶은 요즘이었다.


그리고 오늘.

계속 이런식으로는 도저히 안되겠어서 어린이집에 연락했고, 이미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등원하고 있으니 등원을 원하면 등원해도 좋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이둘을 모두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온 나는 그간 내 노력과 걱정이 허망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몸과 마음은 평온했고, 잠시 행복이라 느꼈지만 글쓰는 내내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오늘 내가 한 선택이 과연 옳은게 맞은 것인가. 물론 답은 없겠지만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점점 더 한숨이 짙어진다.


요즘 내 마음.

무겁고 답답하고 지치고 힘들고 어지럽고 어렵고 어둡고 칙칙한 표현은 다 갖다 붙여도 온전히 다 표현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마음.



그럼에도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여기에 집중해서 살아가야하는 오늘의 나.



더이상 가라앉을 수 없다! 

지난달 고민했던 장바구니 리스트를 주문하고 요즘 꽂힌 오혁의 월량대표아적심을 크게 틀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오늘의 나를 일으켜세운다.

이렇게 일어선 내가 내일은 조금은 더 가벼워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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