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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콩쿠르

by 김보람

콩쿠르 전날, 아들이 일기에 적어둔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그동안의 노력과 긴장, 부담감이 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두 달 반 동안 왕복 40분 거리의 피아노 학원을 주 7일 다니며 콩쿠르를 준비했다. 하루 3시간, 방학 내내 여행 한 번 가지 못하고 피아노에 몰두했다. 아이들도 힘들었겠지만, 학원에서 대기하는 내 시간도 쉽지 않았다. 드디어 콩쿠르를 앞두고 있는데, 아들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다니. 그동안의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들은 7살 때부터 누나를 따라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한글을 익히지 못해 원장님이 조금 더 기다릴 것을 권했고, 나는 아들의 한글 실력과 피아노 열정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8살 1월, 드디어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주 1~5회 레슨으로 진도를 빼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아들은 점점 의욕을 잃어갔다. 결국 “피아노 그만하면 안 돼?”라고 묻는 날이 왔다. 나는 “콩쿠르까지 마치고 나면 피아노 일정을 줄여주겠다.”라고 약속했다. 한 곡을 완성해 무대에 서 보는 경험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다 그만둔 터라, 어디 가서 ‘피아노를 쳤다’고도, ‘안 쳤다’고도 말할 수 없는 애매한 실력으로 남은 게 늘 아쉬웠다. 그래서 아이들만큼은 피아노를 통해 조금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했다. 딸의 경우, 심각한 음치와 박치를 고쳐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피아노를 시작하게 했지만, 예상보다 깊이 빠져들었다. 눈을 뜨면 피아노 앞에 앉고, 쉬는 시간과 자기 전까지도 손을 놓지 않는 아이. 이 정도면 성공한 걸까? 아들도 누나처럼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랐지만, 현실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콩쿠르 날, 부모인 우리가 더 긴장해서 아이들에게 말을 쏟아냈다.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연습한 만큼 무대에서 멋지게 연주하고, 결과는 운에 맡기자.” 수없이 되뇌었지만, 막상 아이들을 무대에 올려보내니 마음이 바짝 타들어갔다. 연습은 두 달 반, 무대 위 연주는 고작 1분 남짓. 앞 순서의 아이가 긴장한 나머지 도입부에서 헤매다 결국 완주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손에 땀이 났다.

‘그래, 완주만 해도 충분해. 트라우마만 남지 않길…’

다행히 아이들은 예상보다 훨씬 잘해줬다. 아들은 1등상, 딸은 준대상! 무사히 완주한 것만으로도 기특한데, 수상까지 하니 기쁨이 배가 됐다.


이제 우리가 준비한 남은 콩쿠르는 두 번. 콩쿠르를 준비하면서부터 한 곡당 세 번의 콩쿠르에 나가기로 했었다. 실수하더라도 만회할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개학이고, 다른 스케줄로도 너무 바쁠 예정이라, 힘들면 남은 콩쿨 두번 중 한 번만 더 나가도 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말했다.


“아니에요! 두 번 더 나갈 거예요.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너무 떨리고 긴장됐는데,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었어요!”


와우. 엄마의 큰 그림, 절반은 성공이다.


오늘의 경험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길. 인생의 어느 날,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혹은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도 음악이 위로가 되어 주길. 그리고 음악과 함께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길.


행복하자. 라거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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