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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화내지 않기로 해.

by 김보람



며칠 전부터 도서관 대출 연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방학을 맞아 리스트에 적어두었던 책들을 한꺼번에 빌리느라 여기저기 도서관을 전전했더니, 반납 기한이 뒤죽박죽이었다. 결국 “한꺼번에 반납해야지” 하다가 기한을 넘기고 말았다.

부랴부랴 반납해야 할 책을 챙기다 보니, 한 권이 부족하다.


대출 내역을 확인해 보니, 아이 집중 듣기 하라고 빌려온 책이었다.

CD까지 세트라 분실하면 새로 사서 반납해야 하는데, 하필 그 책이 가장 비싸다니. ^^

며칠 전, 사촌 동생들에게 자랑하던 장면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로 책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부글부글. 또 시작이다. 자기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번에는 두 배로 화가 났다.


유치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드러난 나쁜 습관.

자기 물건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자꾸 잃어버리고, 또 금세 잊는다.

“이게 다 너무 풍족하게 자라서 그런 거야. “라고 속으로 되뇌며, 책을 못 찾으면 내일 키즈카페 가려던 일정에서 제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이렇게 글로 써보니 너무 가혹했나 싶다. 계모 같고, 나쁜 엄마 같아서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는 중,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또 무슨 일이야? 누가 우리 와이프 화나게 했어?”

남편이 물어서 이래저래 사정을 얘기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걸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냥 용돈에서 차감하겠다고 하고, 차감해. 그리고 앞으로는 책 빌려주지 말고 다 사서 보라고 해. 자기 돈으로 사면 소중한 줄 알지.”


잉? 지금 이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야?

어떻게 모든 책을 다 사서 보라고 해? 다시는 그러지 않게 단단히 혼을 내야지!라고 속으로 반박하려는 순간,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초콜릿 같은 걸 보이게 두고, 먹지 말라고 하면 아이들한테 고문하는 거지. 애초에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집에 들이지 않는 게 맞아.”


그때 뼈를 맞은 것처럼, 이번에도 깊이 찔렸다.

그래, 잃어버릴 물건을 만들어주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아이가 실수할 기회를 준 게 아니었나.

누군가 “잘못하는 아이는 없다. 잘못된 상황을 만드는 어른이 문제다.”라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아, 그렇지. 이번에도 내가 실수한 거다.

환경적으로 반복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이제부터, 화내지 않기로 했다.

혼내지 않기로 했다.

너를 혼나는 아이, 잘못한 아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 내가 더 노력하기로 했다.


물론, 마음처럼 다짐처럼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화가 날 때마다 이 글을 읽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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