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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수줍은 고백과 자파리

by 김보람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체감상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일주일이라고?

평소엔 짧기만 하던 하루가 왜 이리도 길게 느껴지는 건지, 방학삼각지대에 갇힌 느낌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돌밥뫼비우스띠와 엄마메아리반복재생.


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니 혼돈의 카오스가 따로 없다.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헤매던 코로나 시절이 떠오른다.

종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노는 게 제일 좋다던 뽀로로…’

이젠 노는 게 제일 좋은 친구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그 사이 취향이 나뉘어버린 두 아이의 서로 다른 오디오가 겹쳐져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내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에어팟친구를 소환했다.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에어팟.

한쪽 귀에 에어팟을 꽂으면 나만의 세상이 펼쳐졌던 그 시절의 소소한 행복을 떠올리며.

5년을 함께하는 동안, 세탁기+건조기에 두 번쯤 들어갔다 오더니 한쪽 밖에 안 들리지만, 그 한쪽이나마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며칠 전, 둘째 학원 픽업 가다가 차에서 떨군 에어팟 한쪽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겨우 한쪽 남았는데, 충전도 잘 안돼서 중간중간 충전시키느라 오래 쓰지도 못하는데!!!

그걸 잃어버리다니…


며칠을 에어팟을 찾아도 안 보여서 포기할까 하다가, 진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차 안을 다 뒤집었다.

시트 아래쪽 구석에 박혀서 손도 잘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손가락과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겨우 꺼냈다.


드디어 찾았다!!!


기쁜 마음에 에어팟 충전케이스를 찾아 열었는데, 꼬깃꼬깃 접힌 종이쪽지 하나가 에어팟처럼 또르르 떨어졌다.

오잉? 궁금해서 열어보니, 딸아이가 수줍게 적어 놓은 ‘사랑해요’라는 수줍은 고백.

피식, 쪽지를 펼쳐 옆에 두고 필사하려고 책을 들췄더니,

오늘자 페이지에 꽂힌 또 하나의 수줍은 고백 ‘사랑해요’가 있었다. 귀여워!
필사를 마치고 저녁 준비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손잡이에 꽂혀있는 ‘사랑해요’


아,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백이라니.

틈만 나면 뭐든 작게 만들어내는 딸아이의 자파리(‘장난’의 제주도 사투리)가 쓸데없다며 핀잔만 줬는데, 지치고 힘든 일상의 단비 같은 기쁨을 주기도 하는구나.

고마운 마음에 하트모양 포스트잇에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 쪽지를 써서 방문에 붙여두었더니, 잘 읽고, 보물상자(엄마가 써준 편지나 쪽지를 모아두는 상자라고 했다) 넣어두었단다.

어떻게 이런 이벤트를 할 생각을 했느냐 물었더니, 엄마가 요즘 힘들어 보여서 기쁘게 해 주려고 그랬단다.


와… 역시 우리 오니… 감동이다.


정리 안 된 딸아이의 방을 볼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지난날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그래, 그 무엇도 마이너스는 없지! 너의 그 자파리도 언젠가 빛을 발할 때가 올 텐데, 엄마가 너무 엄마생각만 했다.


남은 방학 동안 아이의 자파리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봐 줘야지.

이 모든 순간들이 합쳐져 너의 빛나는 내일이 완성될 테니까.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거 더 많이 오래오래 할 수 있는 네가 되길.


엄마는 언제나 응원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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