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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Oct 26. 2024

알라뷰, 마이 순장메이트




어제 오후, 보건소에서 메시지가 왔다.

건강검진 및 암검진 대상자라며, 빠른 시일 내에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안내메시지였다.


남편은 해마다 직장건강검진이다 국가건강검진이다 하며, 꼬박꼬박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나는 결혼 전 마지막 직장에서 퇴사하고 무섭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 보니, 10여 년간 제대로 된 건강검진조차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로는 ‘검진이 뭐가 무섭나, 나중에 더 아프고 나서 알면 무섭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미루게 됐다.

나이가 들면 제일 무서운 게 돈 없는 거랑 아픈 거 아니겠나.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아, 나라에서 지정한 건강검진은 2년에 한 번씩 하는 자궁경부암검진 밖에 없는데, 이조차도 미루다 보니 산부인과 검진을 다녀온 지도 4년이나 되었다. 세상에.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 눈 깜짝할 사이에 4년이라니.

평소 월경양도 많은 편이고, 배란통, 월경통도 심한 편인 나라서.

특히, 요즘 들어 자꾸만 아랫배가 나오는 게, 혹시 자궁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며 불안감은 고조됐다.

치과만큼 가기 싫은 게 산부인과인데… 

앞으로는 출산계획이 없어, 출산했던 산부인과(집에서 한 시간 거리)가 아닌, 집 근처 부인과진료를 주로 하는 여의사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리고 오늘. 두근거리는 검진을 마치고 상담시간. 

의사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궁선근증이 의심된다고.

자궁선근증은 자궁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병으로, 당장 치료할 수준은 아니지만, 만약 치료시기가 되어 치료하게 될 경우, 치료방법이 자궁적출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응? 자궁선근증?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방금 큰 문제는 없다고 했잖아?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정기검진을 하면서 지켜보자고는 했지만, 내 머릿속에 남는 건 ‘자궁적출’이라는 단어 밖에 없었다.

둘째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출산은 없다고 못을 박긴 했지만, 자궁적출하고는 얘기가 다르잖아?


우선 알겠다고 대답하고 나와, 병원 앞으로 데리러 온 남편을 보니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남편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상황을 설명했더니, ”에이, 괜찮아! 죽는 것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야?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당신은 아무 생각 하지 마. 우선 다른 병원 가보자. 저 의사가 돌팔이 일수도 있잖아”란다.

죽는 것만 아니면 괜찮은 거냐고?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는데? 자기 자궁 아니라고 너무 막말하는 거 아냐? 나 너무 속상한데, 장난해?!!!…


굳은 표정으로 자궁선근증, 자궁적출, 자궁적출후유증, 등을 검색하다가 만약에, 나 자궁적출하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에 그렇게 되면 자기도 정관수술을 하겠다고! 우리는 부부니까. 어떤 고통도 함께하자고 했다. 

“응? 아냐, 그게 아니잖아. 그리고 수술하다 죽을 수도 있잖아. 그럼 어떡해? 나는 나 없는 오빠를 상상할 수 없어”랬더니,

“아, 진짜, 그럴 리 없대도? 그래도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냥 나를 같이 묻자. 내가 당신 순장메이트 해줄게! 아무 걱정 하지 마. 당장 일어난 일도 아닌데,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 없어. 뭐든지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당신은 지금 먹고 싶은 메뉴만 정해! 지금 당장 그거 먹으러 갈 테니까”라고 했다.


풉!!! ‘소울메이트’도 아니고, ‘순장메이트’라니. 


혼자 오버해서 멀리 갔는데, 남편이 다시 나를 제자리로 데려다줬다.

그래, 내일 당장 수술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급하담?

스무디 더 열심히 만들어 먹고, 건강하게 살다 보면 자궁이 더 이상 커지지 않을 수도 있잖아?

너무 앞서서 걱정하지 말자. 내겐 소울메이트보다 더 멋진 순장메이트가 있는걸!?

죽음도 무섭지 않다 이거야. 


검진결과에 아주 잠깐 지구 멘틀을 뚫고 핵까지 내려갔다가, 순장 메이트 덕분에 다시 땅으로 돌아왔다. 

우울하니까 커피에 케이크!!! 를 외치며 최애카페에 들러 남편과 티타임을.

아아아. 얼마 남지 않은 육아휴직기간 더 열심히 놀자!!! 평일 낮의 이런 여유 한동안 힘들 테니.


내가 가끔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극에 달할 때마다 제자리로 돌려놔주는 내 사랑. 

늘 고맙고 알라뷰. 순장메이트 해주기로 한 거 절대 잊지 말기^^ 

내가 애들한테 낚시장비들 다 같이 넣어달라고 할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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