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사방이 벚꽃으로 가득한 3월을 보내며.
드라마에 푹, ‘폭삭 빠졌수다’
3월은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 푹 빠져 보냈다. 평소 제주에 관련된 드라마는 왠지 모르게 불편감(어색한 사투리가 듣기 싫어서겠지)을 느껴 꺼려했는데, 이번 드라마는 하도 광고를 많이 하길래, ‘그래, 얼마나 재밌나 봐 보자’ 싶은 도전 의식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매주 금요일 밤이면 잠든 아들 옆에서 에어팟 끼고 혼자 숨죽여 보며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오열로 끝났다. 덕분에 나는 토요일 아침마다 사연 있는 여인처럼 퉁퉁 부은 얼굴이 되어 깨어나고, 또 일주일을 꼬박 다음 에피소드를 기다리며 인스타 짤로 엮어진 드라마 다시 보기에 푹 빠져 보냈다.
제주도민이라 유난히 더 빠져서 볼 수 있었던, 우리 집 애순이 오여사(우리 엄마)님과 폭풍 공감하며 볼 수 있어 또 좋았던 드라마였다. 그야말로 ‘폭삭 속았수다’가 아니라, ‘폭삭 빠졌수다’였다.
적응의 한 달, 3월의 루틴
3월 한 달. 개학과 동시에 적응할 새도 없이 너무도 바쁘게 흘러갔고, 방학 동안 늘어지게 늦잠 자던 버릇을 고치지 못한 아이들과 아침마다 등교 전쟁을 치렀다.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건 어렵고, 밤이면 하고 싶은 걸 다 하지 못했다며 “엄마, 5분만, 10분만 더” 하다가 아쉬워하며 잠들기 어려웠다.
첫 주는 정신없이 바빴고, 다음 2주쯤 일상에 적응하고,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 익숙해질 만하니까 3월이 끝나 있었다.
벚꽃 산책
꽃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하교 후에도 스케줄 많은 친구들과 달리 벚꽃을 핑계로, 간식을 핑계로 얼굴 한 번 더 보고, 손 한 번 더 잡고 산책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좋았다. 드라마 여파로, 쑥쑥 커가는 아이들의 찰나라도 한 번 더 잡아보려고 평소에 안 찍던 셀카도 더 자주 찍고, 아이와 나의 순간순간을 담아보려 노력했던 한 달이었다.
누군가는 그 시간도 아깝다며 간식 먹으며 학습지라도 풀고, 영어 영상이라도 보여주라고 했지만, 그게 뭣이 중한가. 지나고 나면 망각 곡선에 의해 잊혀질 지식 한 줌보다, 이 좋은 봄날 아이들과 봄내음 맡으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이들의 체온과 눈맞춤이 정말 좋았다.
팝콘같이 팡팡 터지는 벚꽃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동시 같은 감탄사 한 줄이,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간 속 향기와 분위기가 너희의 삶에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이 될 수 있기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결혼 10주년, 관식이보다 훈경이!
3월 마지막 주는 늘 우리 부부의 결혼 주간이라, 벚꽃 시즌 투어를 하며 보냈다. 벚꽃 꽃망울이 얼굴을 내밀 때부터, 남편과 만났던 그 봄날을 추억하며 한동안 설렘 주의보가 내리는데, 올해는 유난히 벚꽃을 오래 볼 수 있어 참 행복한 결혼 주간이었다.
남편이 올해 초부터 준비해 준 10주년 결혼기념 선물과 함께, 근무지를 옮긴 덕에 휴게시간이 맞으면 잠시 카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는데, 결혼 주간 어느 날엔 “커피 마시자”더니 꽃다발과 손편지(세상에, 손 편지! 10년 만에 받아보는 손 편지! 감동 백만 개)를 가지고 와 또 한 번 행복의 도가니탕에 빠지게 해 주었다.
이러니 내가, “관식이보다 훈경이!!!”를 외칠 수밖에. 연애할 때도 물론 좋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더 진가를 발휘하는 우리 훈경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 받기만 한 결혼기념일이라 올해는 뭐라도 번듯하게 해주려고 했는데, 올해도 역시나 나는 받기만 하는 보래미라 고맙고 미안할 뿐이지만.
려보, 그래도 내가 20주년엔 뭐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그사이에 내가 로또 되면, 배부터 사줄게! “우리 려보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고 큰소리치고, 올해도 날름 잘 받아먹었습니다. 꺌꺌.
정신없는 오늘이, 결국 봄날
한 달을 마무리하며, 자주 연락하는 친구와 “친구야, 우리 3월은 적응하느라 진짜 아무것도 못했고, 4월에는 좀 정신 차리고 살아보자”라고 다짐하다가, “근데, 우리가 4월이라고 안 바쁠까? 어영부영하다 보면 5월이고, 5월은 가족의 달이라 더 바쁘고, 6~7월 지나면 또 금방 방학이야! 꺌꺌꺌” 하고 웃었다.
그치, 뭐. 언제라고 조용히 아무 일 없이 지나간 적 있던가. 매일이 정신없는 나날들의 연속인 것을. 그래도 돌아보면 그때가 봄날이더라. 그럼 결국, 지나고 보면 오늘도 봄날이겠지. 지나가고 후회 말고, 오늘 하루에 더 집중하고, 오늘부터 행복해야지.
한 달 내내 빠져 있는 ‘봄내음보다 너를_김나영’의 노래를 들으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