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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함께 바라보는 시간

학기 초 첫 학부모상담을 다녀와서.

by 김보람

남편과 함께 학부모 상담에 다녀왔다.
 첫째가 입학한 이후로, 1학기 상담만큼은 꼭 남편과 같이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담임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이 날만큼은 남편도 시간을 비워둔다.

사람들은 아직도 부부가 함께 상담을 가냐며 의아해하고, 선생님도 매번 조금은 부담스러워하시는 듯하지만, 나는 이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
 학기 초, 남편과 함께 선생님을 만나면 학급 분위기나 운영 방식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만큼 아이와 나누는 대화의 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같은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된다.


이번엔 아들 상담이 먼저였다.
 우리가 나란히 교실에 들어서자,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사실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예요. 너무 잘 지내고 있어서요.”

그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아들의 성격에 대해 여쭤봤다.
 누나가 워낙 활발하고 눈에 띄는 편이라, 아들은 늘 그늘에 가려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소극적이고 낯을 많이 가려 걱정도 많았는데,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선생님은 처음엔 체격이 작고 살짝 물러서는 듯해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고 하셨다.

“아주 적극적인 편은 아니지만, 자기 할 말은 꼭 하고, 맡은 일도 묵묵히 잘 해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내 눈엔 아기 같기만 한 아들인데, 그 사이 또 한 뼘 자랐구나.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이야. 그간의 걱정이 싹 녹아내렸다.

글쓰기를 어려워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테니까.


이어서 딸 상담이 이어졌다.
 작년에 친구 관계로 마음고생을 좀 했던 터라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히 올해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고 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선생님의 ‘관계’에 대한 철학이었다.

“특정 친구하고만 어울리지 않고, 다양한 친구들과 지낼 수 있도록,
 혼자 있는 시간도 외롭지 않도록, 또 잘 맞지 않는 친구와도 협력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어요.”

그 말속에서 선생님의 깊은 관찰력과 따뜻한 기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 선생님과 함께라면, 딸의 학교생활이 훨씬 단단해지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딸은 언어적 표현력이 뛰어나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하셨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아이처럼 보인다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가장 적극적인 모습은 급식실에서예요. 하루에도 두세 번씩 추가 배식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 얘기에 남편과 나도 웃고 말았다.
 아무리 식단 조절을 하고, 주 4회 운동을 시켜도 몸무게가 그대로인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두 번까지는 괜찮지만, 세 번째부터는 제가 지도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농담 섞인 말에 웃으며 상담을 마무리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와 교정을 둘러보니, 첫째가 입학한 이후 벌써 4년째 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졸업할 때까지도 공사는 계속될 거라는 교육청 관계자의 말이 떠올랐다.
 (서귀포에 있는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비슷한 상황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된다.)

운동장은 모듈 교실 증축으로 절반 이상을 쓸 수 없고, 매년 증축하면서 교실 구조도 제각각이라 정신없긴 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범섬 풍경이 모든 걸 덮었다.
 아이들이 매일 저 풍경을 보며 지낸다는 것, 서귀포 앞바다를 배경 삼아 자란다는 사실 자체가 큰 선물처럼 느껴졌다.


짧은 상담이었지만, 온 힘을 다해 집중했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잘 지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그걸 조금 더 믿고, 기다리고, 응원해 주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다시 다짐했다.
 이 짧은 만남을 가볍게 넘기지 말자고.

같이 들어야, 같이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느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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