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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채족발이 쏘아 올린 작은 공

by 김보람


수요일 밤이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쥬시쿨 자두맛’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아주 구체적으로, 쥬시쿨 자두맛. 꼭 자두맛이어야 했다.

밤낚시 나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여보… 나 쥬시쿨 자두맛이 먹고 싶어.” 했더니,

그는 돌아오는 길에 동네 편의점을 돌고 돌아 ‘쥬시쿨 자두맛 두 개’를 들고 왔다.

“자두…? 설마? 진짜? 아니지??” 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럴 만했다.

첫째 임신했을 때, 입덧을 거의 9개월 하며 13kg이 빠졌는데, 그때 미친 듯이 먹고 싶었던 게 바로 ‘새빨간 자두’였기 때문이다.

제철도 아닌 자두를 구하려고 도내 마트며 과일가게를 다 뒤졌지만 실패했고, 눈물을 머금고 ‘새빨간 자두’를 읊조리는 나를 위해 결국엔 육지 자두 농장에 첫 수확 예약까지 했던 남편.

택배비 포함 자두 한 박스가 애플망고급 가격을 능가했는데, 그 힘들게 구한 자두를 받아 한 입 베어 물곤, “여보… 이 맛이 아니야… 우엑우엑…” 하고 도로 뱉은 사람은 나였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를 떠올릴 때면, 남편은 징글징글했다며 자두만 보면 간담이 서늘하다고 했다.

어쨌든 쥬시쿨 자두맛 한 팩을 단숨에 원샷하고 ‘에이~ 설마~’ 하며 다시 누웠는데, 이번엔 갑자기 냉채족발이 먹고 싶어졌다.

부산 냉채족발.

그건 또 둘째 임신 때의 이야기다.

첫째 때는 토덧으로 못 먹어서 힘들었는데, 둘째 땐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먹덧이었다.

항상 가방에 뭔가를 넣어 다녀야 할 정도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

부산 냉채족발이 먹고 싶어서 야식집 리스트를 뒤적이다, 결국 부산행 항공권을 결제했다.

그리고 새벽 6시. 자는 남편을 깨워 “여보, 공항 가야 해. 나 냉채족발 먹고 싶어.” 하고는,

자고 있던 첫째를 들쳐 업고 떠난 1박 2일 냉채족발 투어.

숙소 예약도 안 하고, 공항 가는 길에 호텔 예약 후 나머지는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던,

진정한 P형 인간의 여행.


생선 손질을 마치고 겨우 잠자리에 든 남편에게 “여보, 나 냉채족발 땡겨. 부산 가야 할 것 같아.”

남편은 잠이 확 깼다며, “부산이 아니라, 병원부터 가보자.”고 했다.

풉, 아니라고. 임신 아니고 그냥 여행이 가고 싶은 거라고.

한동안 뜸했는데, 슬슬 여행 뽐뿌가 올라오는 거라고 대답하고선 바로 스카이스캐너 켜서 항공권을 검색했다.

‘우리 네 식구 부산 왕복이 15만 원도 안 된다고? 이건 우주의 신호다. 지금이야!!!’

심지어 금~일요일까지 다녀올 수 있는 일정까지 머릿속에서 쭉 그려졌다.

부산 간 김에 첫째가 노래 부르는 경주도 찍고, 부산 가서 냉채족발도 먹고, 보수동 책방골목도 다녀와야지.

밤새 신나서 챗지피티랑 여행 계획을 짰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에게 “얘들아, 우리 내일 여행 가자. 체험학습 신청서 내기엔 날짜가 부족해서 결석해야 하는데 괜찮아?”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결석쯤이야~ 여행은 언제나 옳지!” 하며 신나게 등교했다.

근데 남편 휴무 조정이 안 됐다.

그래서 경주 일정까지만 같이 가고,

부산은 나 혼자 애 둘 데리고 다녀오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나는 P니까!!!’ 하고 주문을 걸며 짐 싸고, 숙소 알아보던 중

첫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줄넘기 하다가 발목 접질렀어… 걷지도 못하겠어…”

그리하여, 여행은 결국 취 to the 소.

남편은 “다음에 제대로 계획해서 가자.”고 했지만, 나는 기분이 너무너무 나빠졌다.

그래서 남편은 퇴근길에 나를 위로한답시고 왕복 40분 거리 족발집에서 냉채족발을 사 왔다.

나는 턱밑까지 올라온 “흑… 여보 이 맛이 아니야…”를 간신히 삼켰다.

여행이야, 또 가면 되지.

하지만 지금 타오르는 이 마음은… 흑…

일단 잘 식혀서 주말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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