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까운 듯 먼 봄날의 여행

by 김보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쉴 걸 그랬나?
 급하게 계획했다가 취소한 부산 여행.
 아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주려고 시작한 동네 여행이었는데, 일이 커져버렸다.


시작은 단순했다.
 여행은 가고 싶고, 오랜만에 일정 없는 주말이라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행이 뭐 별 건가? 그냥 어디든 떠나면 되는 거지.
 ‘여기서 행복할 것.’ 제주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야만 여행이야?’ 하다가, 문득 제주도 초등학생 버스 무상 지원 서비스가 떠올랐다.
 아이들과 버스 여행을 떠나면 되겠네!!!!!!


금요일 저녁, 아이들과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었다.
 아이들의 선택은 제주시 동문시장.


아? 시내에서 해결하고 싶었는데, 시외까지? 
 토요일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수영 강습까지 끝내고 출발해야 했기에 시간은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열렬한 성화에 결국 강행을 결정했다.


출발, 귀가 시간을 정하고, 버스경로를 검색했다.
 이동 시간을 빼니 시장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필요한 금액은 얼만지 생각해 보며 금요일 밤을 불태웠다.


자기 전, 아이들은 용돈이 부족했는지 급히 ‘아나바다 장터’를 열었다.
 엄마 아빠의 지갑을 탈탈 털어 여행을 가기로 했나 보다.

결국, 우리가 사준 물건을 다시 헐값에 되사야 했다.
 웃음이 절로 났다. 이렇게나 열정적인데, 어떻게 안 갈 수 있겠냐며.


토요일 아침, 출발 직전까지도 남편은 "차로는 한 시간이면 될 텐데, 굳이 버스로? 갈아타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4시간은 이동해야 한다고. 그냥 차 타고 다녀오자."

버스유경험자 남편은 끝까지 우리를 설득하려 했지만, 아이들과 나는 완강했다.

계획한 대로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이번 여행은 버. 스. 여행이라고.


하지만 후회는 출발한 지 30분도 안 되어 찾아왔다.

왕복 2 시간 거리였던 동문시장은, 버스를 갈아타야 했기에 결국 이동 시간만 왕복 4시간이 되었다.
 하필 그날, 516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마방목지 행사로 버스는 만차, 교통 체증까지 겹쳤다.
 아이들은 "목마르다", “불편하다”, "언제 도착해?" 투정이 끊이지 않았다.


두 시간 만에 동문시장 도착.
 지친 몸을 끌고 추억의 맛집 ‘사랑분식’에서 허기를 달랬다.
 아이들이 고른 간식거리도 찾아 먹으며 시장 골목골목을 누볐다.
 구경을 마친 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칠성로부터 탑동광장까지 산책도 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동문시장으로 다시 돌아가 저녁으로 닭강정을 먹고, 계획대로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귀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남편은 몰래 속삭였다.
 "우리 그냥 택시 타고 돌아가자."

아들은 얼씨구나 신이 났다. 
 "엄마, 2만 원만 내줘. 나머지 3만 원은 내가 낼게. 택시 타자."


세상에, 시장에서 비싸다고 소금빵아이스크림도 안 먹고 아낀 그 용돈을?

계획했던 대로 용돈 플렉스를 보여준 딸과 달리, 소금빵아이스크림이 5000원이라 비싸다며, 바로 앞 1000원짜리 꿀호떡을 먹으며 소금빵아이스크림을 바라만 보았던 우리 아들인데, 택시라니!?


우리는 좀 많이 놀랐지만, 끝까지 딸과 나는 단호했다.
 "아니야! 우리가 계획한 대로 끝까지 해내야 진짜 여행이지!"

결국 ‘끝까지 파’가 승리했다.


 다시 두 시간. 버스를 타고, 봄비 내리는 꼬불꼬불 516 도로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지쳐서 터덜터덜 걸어왔지만, 그래도 무사히 잘 다녀온 여행. 참 다행이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버스를 타면 풍경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재밌어서 좋다.
 차를 타면 짐도 많이 가져갈 수 있고 덜 걸어도 된다.
 버스도 좋지만, 다음엔 꼭 차를 타고 갈 것이다."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편안함을 다시 감사하게 됐다.
 그리고 고생 끝에 맛보는 작은 성취가 얼마나 값진지를 알게 됐다.


그래도, 다음 버스 여행은, 가까운 데로만 가기로 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냉채족발이 쏘아 올린 작은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