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금요일 오후, 아이들 귀가 시간을 기다리며 이불속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나에게 전화벨이 울렸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나의 ‘허파 언니’의 목소리였다.
“보람아, 뭐 하고 있어?”
“아, 언니~~~ 진짜 오랜만이야. 열심히 이불속을 헤엄치고 있었지. 꺌꺌.”
“우와, 정말 최고다. 맨날 바쁜 네가 웬일이야? 요즘 자기계발 안 해?”
“워~ 언니, 자기계발할 힘도 없어요. 요즘은 그냥 누워만 있고 싶어요.”
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크, 너 아마존 같은 역할을 하고 있구나. 지구의 허파처럼 말이야. 바쁜 사람이 있으면 한가한 사람도 있어야지. 그래야 균형이 맞는 거야. 잘하고 있어!”
그 말에 4월 내내 무기력했던 내 일상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맞다! 나는 아마존같이 '지구의 허파이자 생물 다양성의 보고' 같은 존재로 내 역할을 해내고 있었던 거다. 모든 사람이 열심히만 살 수는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살아야 전지구적 평균을 유지하는 거 아니겠냐며 낄낄댔다.
이렇게 또 나의 게으름을 전지구적 관점으로 포장하며 합리화하는 나, 정말 대단하다!
3월은 내내 피아노 콩쿠르 준비로 바빴다.
쌓아뒀던 에너지를 다 써버렸는지, 4월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엄마의 일상이란 게 아침에 눈 뜨고 밤늦게 잠들 때까지 쉼 없이 바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그동안 내려놓지 못했던 집안일이나 소소한 자기계발조차도 내려놓고 나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한 달이었다.
특히, 주 7회였던 피아노 레슨을 주 1회로 줄였더니 숨통이 트였다.
아이들 학원 스케줄을 조정해 귀가 시간을 맞췄더니 내 자유 시간이 늘었다.
늘어난 자유 시간만큼 뭔가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할 여유도 없이 그저 쉬고 싶었다. 중간중간 몸도 좋지 않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쳤다는 핑계를 방패 삼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로 채워버렸다.
4월의 나는 그야말로 늘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을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 '자유'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됐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본능적인 자유가 아닌, '선택의 여지'가 발생하는 적극적인 자유를 생각해 보게 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를 넘어, 지금 당장의 안온함이 아니라 미래의 나를 위한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언제까지나 지구의 허파 역할만 하며 지낼 수는 없다.
5월은 가정의 달로 바쁘고 정신없게 흘러가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의 선택의 여지를 확장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겠다.
이제 다시 나의 리듬을 찾아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