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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도 꼭 나랑 결혼해 줘.

by 김보람


“여보, 이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야.”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럴 때면 나는 “늘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될 수는 없지! 이 정도면 충분해, 지금 이대로 너무 좋아! 괜찮아!”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하하.


최근 직무변경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10년 이상 컴퓨터적 사고관을 가지고 일해온 대문자 J 남편은 언제나 체계적인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목적의식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남편의 세상엔 0과 1이 전부고, 늘 자기만의 답이 정해져 있으며, 계획이 틀어지면 많이 힘들어했다.

그에 반해 나는 체계적인 세밀한 계획보다 자율적인 방법을 추구하고, 결론보다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이렇게 다른 우리는 매일, 매 순간, 10년을 살아도, 전혀 닿지 못하는 이해의 영역을 맞춰가느라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같이 산 지 10년이면 서로 맞출 필요 없이 뭐든 잘 맞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멀었나 보다.

식성부터 정리정돈 방식, 취미, 물건을 대하는 태도 등등 그 어느 하나 맞는 게 없다 보니,

매일 “아 진짜 로또야? 왜 점점 더 안 맞아?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거야?”하면서도

우리가 큰 문제없이 여전히 잘 지내는 건 역시, 아직도 너무 많이 사랑해서… 일까?


남편에게 나는 늘 “나니까 려보랑 같이 사는 거야. 알지? 나 진짜 인생 최대의 배려와 양보를 하고 있는 거라고”하고, 남편은 내게 “나야말로!!! 나니까 같이 사는 거지! 내가 더 큰 봉사를 하는 셈이 라고!”하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많은 배려와 양보를 하고, 서로를 얼마나 측은지심을 발휘하는지.

관계라는 게 어느 한쪽의 노력으로는 절대 오래갈 수 없기에.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불타듯 뜨거운 사랑만큼, 서로를 위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걸.


결혼 전에는 ‘어떻게 한 사람이랑 백년해로하며 살지? 불타듯 뜨거운 사랑의 유효기간은 2년 남짓이라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어떡해?”하며 불안해했는데,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이 너어어어무 좋은 걸 보면, 참 다행이다.


얼마 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거야. 세상에서 날 이만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는 것 같거든. 당신도 다시 태어나면 나랑 결혼할 거야?”라는 물음에,

남편은 그냥 ‘다음 생에 태어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다’고… “내게 다음 생은 없으니, 이생에서 최선을 다해 너를 사랑할게”라고 덧붙여 말하긴 했지만, 이건 좀 엎드려 절 받은 느낌이라, 이사랑 자세히 보면 나만의 외사랑이 아닐까 싶다. 하하하.

그래도 괜찮아, 내가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풉.


돌이켜보니, 늘 계획적이던 남편이 딱 한번 즉흥적이던 때와 늘 즉흥적이던 내가 딱 한번 계획적이었던 때가 겹치는데, 이건 바로 우리의 결혼이었지 않나 싶다.


비혼을 꿈꾸며 인생을 즐기던 남편에게 내가 먼저 고백했던 그날.

“나는 원래 비혼주의자고, 나이가 있으니 연애만 하려거든 시작도 하지 말고, 결혼할 거면 한번 만나보자!”라고 말했던 남편에게 바로, “그럼 결혼할게요!”하고 대답했다.

스무 가지가 넘는 배우자조건을 걸고 배우자기도를 하던 내게 외모 빼고(나의 이상형은 키 크고 하얀 남자였다) 다른 조건 모두 충족된 남편을 만났고,

남편의 절대 안 되는 배우자 조건 3가지 (장녀, 장거리연애, 스케줄근무하는 여자)를 모두 충족했던 나를 만났으니까.


뭐 어쨌든, 후회해도 소용없지. 이미 10년이나 살았고, 우리 사랑의 결실인 귀여운 양 한 마리, 닭 한 마리가 있어 이제 도망도 못 갈 텐데. 꺌꺌.


려보, 남은 인생 딱 지금처럼만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삽시다.

내가 더 잘할게. 다음 생에도 나랑 결혼해줘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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