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받아쓰기 숙제를 받아온다.
어릴 때부터 쓰기를 어려워했던 아들은 쓰기 숙제에 정말 취약했다.
주말 일정이 늘 가득 차 있는 우리 집의 금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숙제에 대한 논쟁이 일요일 밤까지 끊이지 않는다.
평소 아이들의 자율성을 키워주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꼭 마치되, 마지노선만 정해두고 원하는 시간에 완료하도록 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들의 쓰기 숙제만큼은 시간도 에너지도 너무 많이 필요해서 옆에서 독려를 자주 하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의 받아쓰기 숙제를 독려하던 중에 단전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우리 아들은 받아쓰기 급수표를 항상 오른쪽에 두고 글을 적는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아니, 왜 이렇게 불편하게 받아쓰기를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리고 왼쪽에 두면 훨씬 더 편하다고, 오른손잡이니까 글자도 가려지지 않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아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게 편해. 그리고 나는 빨리 쓰지 않아도 돼."
그 순간, 어이가 없었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 걸까?
천천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함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빨리 쓰지 않아도 된다니? 잘 시간 한참 넘었는데 무슨 소리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게 효율적으로는 맞는 말일지 몰라도 아이의 행복과는 또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효율은 분명 편리함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편리함은 대부분 쾌적함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쾌적함과 행복은 동일한 가치가 아니라는 이야기.
효율은 매력적이다. 일을 빠르고 간단하게 끝낼 수 있으니 삶이 훨씬 편해진다. 하지만 그게 항상 행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효율을 너무 강조하면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성취감을 놓칠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받아쓰기를 하면서,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효율과 행복 사이에서의 갈등은 어른인 나도 쉽지 않다. 내 기준에선 효율이 더 중요한 가치일지 몰라도, 아이의 기준에선 행복이 더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마도 아이가 자기만의 행복을 느끼면서도 자연스럽게 효율을 배울 수 있도록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게 아닐까 싶다.
아들의 받아쓰기 숙제는 단순한 학습이 아니었다. 효율과 행복, 이 둘 사이에서 나에게 많은 질문과 깨달음을 던져줬다. 효율적인 삶도 좋지만, 그 안에 행복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아들아, 네가 좋아하는 대로 해도 좋아.
엄마는 네가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너만의 방식을 찾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