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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행이야

내 딸은 나를 닮지 않았어.

by 김보람

결전의 날이 밝았다. 고대하던 딸아이의 첫 수영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개인 출전 대회였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라 막막함이 앞섰다.

학교나 대회 측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결국 대회 측에 직접 전화를 걸어 문의해야 했다. 그제야 대진표는 수영연맹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고, 워밍업은 당일 아침 7시부터 8시 반까지 알아서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아서’라는 말에 혼돈의 카오스가 시작됐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대회장으로 갔다.


워밍업 시간에 맞춰 대회장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단체별 돗자리가 촘촘히 깔려 있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온 게 큰 실수였나?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단체 선수들은 각자 코치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개인 출전자인 딸아이는 혼자서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 했다.


“엄마는 대회장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가서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빠꾸! 해도 괜찮아.” 애써 담담한 척하며 딸에게 말했다.

사실, 탈의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돌려세워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200퍼센트였는데,

딸아이는 “엄마,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하고 쿨하게 들어갔다.


워밍업을 위해 수영장으로 들어간 딸.

그러나 50m 수영장을 25m로 나누어 진행되는 워밍업에 수십 명의 선수들이 몰려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리를 찾는 듯했지만,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단호하게 신청조차 하지 못하게 할걸, 아니다, 그냥 단기 레슨이라도 시킬 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동안, 딸아이가 물에 발도 못 담그고 나올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딸아이는 물속에서 당당히 스타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안도감과 대견함이 밀려와 눈물이 날 뻔했다. 관중석에서 박수를 치며 “다행이다!”를 외쳤다. 워밍업을 끝낸 딸이 뿌듯한 표정으로 나왔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당당했던 딸의 말처럼, 그녀는 혼자서 워밍업 두 번을 완벽히 해냈다.

한 번도 힘들었을 텐데, 나라면 한 번이라도 만족하고, 아니 엄두가 안 나서 시작조차 못하고 그냥 울면서 집에 가자고 했을 텐데, 워밍업을 두 번이나 하고 나오다니, 너무 신기했다.


"경기가 50m인데, 워밍업은 25m만 할 수 있다고 해서, 두 번 해서 50m 맞췄어.”라는 딸아이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대담함과 자기 주도적인 모습에 감탄했다.


경기 시간이 다가왔고, 딸아이는 배영 50m에 출전했다. 연습 때 최고 기록이 1분 20초였던 딸은 1분 4초의 기록으로 16초나 단축하며 경기를 마쳤다. 12명 중 9등. 예상했던 꼴찌는 면했다.

대부분이 국제학교 소속이나 수영클럽 출신 선수들 속에서, 고작 주 1-2회 월 3만 원짜리 갓성비 수영레슨 받고 처음 참가하는 개인 선수로서 기죽지 않고 최선을 다한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우리 딸, 진짜 갓성비 최고다! 감동이야^^ 풉.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딸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나를 닮아 에너지와 열정은 넘치지만, 실행력이 부족하다 여겼던 딸아이가 이런 적극적이고 대담한 모습을 보이다니.

내 딸이지만, 나와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가슴이 뛰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무엇을 하든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떨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뭘 해도 잘할 거야. 우리 오니.

엄마는 널 믿어! 언제나 너를 응원해!

우리 오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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