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서리

by 김보람

한 달 넘게 장마가 지속될 거라는 기상청 예보와 달리, 눈 씻고 찾아봐도 비소식이 없는 뜨거운 여름이 시작됐다.

이제는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에어컨을 켰다 껐다 반복하는 것보다 일정온도로 지속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데, 혼자 남아있는 집에 에어컨을 계속 켜두자니 괜히 부담스럽다.

모두가 외출한 집에 남아 창문을 활짝 열었다.

땀으로 샤워하며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스커피라도 한잔 마셔볼까? 했더니...

아침마다 아이들이 텀블러에 얼음물을 꽉꽉 채워 학교에 가는 덕분에, 나에게는 시원한 집 커피 한 잔 타먹을 얼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비상, 비상!!! 얼음 정수기가 있는 친정집이 떠오른다.

“떠나야 할 시간인가? 얼음 원정”


어제 엄마에게 흘리듯 내뱉었던 한마디.

"아~ 간장양념 깻잎지 먹고 싶다… 그거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인데!"

그 말을 기억하셨는지,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마트에서 귀한 깻잎 사다가 깻잎지 담갔어. 와서 가져가~”

그 한마디에 신나게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깻잎지가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볶음밥 한 그릇.

“나 공복 시간 늘려야 하는데… 정말 안 먹을 건데… 한 입만?” 슬쩍 돌아서는데, 이미 한 그릇이 예쁘게 담겨 있었다.

하하하, 진짜 안 먹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네.

단숨에 한 그릇 뚝딱 흡입했다. 공복시간 타령하던 나는 대체 어디로? ^^


"역시, 엄마가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어! 내가 하면 왜 이 맛이 안 날까? 대체 이유가 뭐지?"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남은 볶음밥 재료까지 반찬통에 담아, 깻잎지랑 함께 챙겨주셨다.


“애들 하교할 시간 아냐? 어서 가~”

등 떠밀리듯 부엌 정리도 못 한 채 현관을 나서는데, "아 맞다, 얼음!!!"

얼음 정수기 앞에서 봉투 가득 얼음을 채우다 한참 웃었다.

"아빠, 시집간 딸은 도둑년이라더니 내가 딱 그 짝이네. 깻잎지에 볶음밥 재료에… 이제 하다 하다 얼음까지 퍼가네. 어떡하면 좋아~" 웃으며 말하자,

아빠는 “필요하면 더 가져가. 냉동실 얼음도 줄게.” 하신다.


그 말에 울컥. 뿌엥. 역시, 엄마 아빠밖에 없다.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 그 사랑 덕분에 나는 오늘도 든든하게 살아간다.


돌아오는 길, 내 품엔 얼음과 깻잎지, 볶음밥 반찬이 가득했고, 딸을 향해 다짐했다.

“딸아, 너는 엄마 닮지 마라… 엄마는 네가 시집가면 현관 비밀번호부터 바꿀 거야^^”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날이 오면 나는 또 냉장고 문을 열고 있을 거란 걸.

아무리 닮지 않으려 해도, 나는 참 별수 없는 아빠엄마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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