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8월을 보내며

by 김보람


여전히 한낮 최고기온은 32도를 웃돌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8월의 끝자락이다.

과연 이번 주에는 여름 내내 욕실 한편을 차지한 스노클링 장비를 봉인할 수 있을까?


매주 웻슈트가 다 마르기도 전에 다시 바다로 나서는 아이들을 따라, 법환 앞바다를 집 앞마당 드나들듯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에 몸을 담근 8월이었다.

여름이 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제주의 여름은 길고 길다.

빠르면 5월부터 늦으면 10월까지 물놀이가 가능한 제주의 긴 여름을 즐기기 위해 코로나 끝무렵부터 우리는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쳤고,

이젠 그 누구보다 물을, 바다를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이 되었다.

수영을 배우기 전에는 튜브며 구명조끼며 챙길 장비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이젠 수영장이 아닌 바다에서도 웻슈트, 스노클마스크, 오리발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토록 꿈꾸던 바다아이들이 된 것이다.


올여름만 바라보며 꿈꿨던 프리다이빙은 첫째의 중이염이슈로 포기했고, 그 대안으로 찾았던 서핑조차 기상이슈와 일정조절실패이슈 등으로 실패했지만,

스노클링과 바다채집만큼은 원 없이 한 8월이었다.

사실 뒷정리의 번거로움 때문에 멀리했던 바다였는데, 집 앞에 있는 이 바다를 더 가까이 품게 될 줄은 몰랐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을 때, 망설이지 말고 누려야 한다는 단순한 깨달음이 바다에서 피어올랐다.


아이들이 즐거운 만큼 애미의 고됨은 배가되어, 나에게는 참 고단한 달이었다. 한포진이 불쑥 터져 오르고, 코로나는 세 번이나 나를 덮쳤다.

몸은 지쳐 있었고 마음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웃음과 가족의 기운 덕분에, 나는 여전히 여름을 기억할 힘을 얻었다.


방학을 맞은 우리 가족은 집에 머무는 날보다 밖으로 나서는 시간이 더 많았다.

비양도의 푸른 바람, 범섬 앞바다의 투명한 파도, 논짓물의 시원한 물길, 그리고 지쳐 쓰러질 즈음, 찾은 도서관과 미술관의 고요한 오후.

한 달 내내 발걸음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 모든 여정은 결국 ‘함께’였기에 즐겁고 소중했다.


비양도에서 가족 모두 자전거를 탔던 기억은 특히나 선명하다.

폭염에 땀으로 샤워를 했지만,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의 기분과 비양도일주를 마친 후의 쾌감은 글로 다 담기지 않을 정도의 감동이었다.

아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한여름 밤의 낚시는 또 다른 선물이 되었다.

육지서 내려온 친구들의 니즈를 핑계로 시작된, 달빛 아래 펼쳐진 밤바다에서 맥주 한 모금, 과자 한 줌이 주는 행복은 의외로 단순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8월의 냉장고는 늘 수박으로 가득했다. 올해 유독 수박값이 비싸다고 난리였는데, 어째서인지 우리 집엔 수박이 끊이질 않았다.

감사히 받아 든 엄마의 선물이 어느새 수박폭탄 수준으로 이어져(엄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수박 세네 통을 가져다주셨다)

8월 내내 수박이 상하기 전에 해치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매일 수박을 달고 살았다.

어느 순간엔 이제 제발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름의 달콤한 기억 한 모퉁이에 수박이 엄마의 강력한 사랑으로 새겨졌다.


한 달 내내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케데헌의 음악이 끊이지 않았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해져 2025 여름날의 OST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최재천 교수의 《희망 수업》과 한 달을 함께했다. 통섭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도전하고 경험하고 또 기록해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겼다.

책의 문장이 지쳐 있던 내 마음을 다독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되었다.

체력적으로는 분명 한계가 많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8월은 결국 따뜻하게 기억된다.

짧지만 길었던 방학은 유쾌했고, 고단했으며, 무엇보다 감사했다.

이제 9월이 시작된다. 이젠 바다대신 오름에 오르고, 숲을 걸으며, 책도 읽고, 잔잔히 흘려보내고 싶다.

무엇보다도 소망은 단 하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나아가는 것.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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