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렌드코리아 2026』를 읽고
나는 매년 이 책을 읽는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을 통해 지금의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트렌드코리아 2026』를 덮으며 든 감정은 익숙함과 동시에 묘한 피로감이었다. 대부분의 키워드가 낯설지 않았고, 특히 인공지능이 일상과 사고 전반을 재편하고 있다는 흐름에는 깊이 공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감이 클수록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요즘 나는 매일 AI와 대화하며 살고 있다. 기록은 자동화되고, 생각은 구조화되며, 일상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굴러간다. 분명히 얽매이던 시간은 줄었다. 그런데 그 줄어든 시간이 곧바로 ‘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은 시간은 더 많은 고민과 생각으로 채워졌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나만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건 아닐지에 대한 불안이 따라붙었다.
책의 후반부, 사람들이 효율성을 극대화할수록 오히려 긴장과 피로가 커진다는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AI가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그 시간에 대한 경계와 기준은 여전히 개인의 몫이었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멈출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선택을 스스로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순간부터 휴식은 자연스러운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결정을 요구하는 행위가 되어버린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더 효율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 대신, 다른 질문에 도달했다.
‘이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AI를 사용하되, 효율이 삶의 목적이 되도록 두고 싶지는 않다. 자동화로 시간을 벌더라도, 그 시간을 다시 성과로만 채우는 데에는 거리 두기를 하고 싶다. 모든 하루를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생각이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싶다. 쉬는 시간만큼은 생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무 의미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으로 남겨두고 싶다.
『트렌드코리아 2026』는 나에게 새로운 정보를 많이 주기보다, 내가 이미 느끼고 있던 감각을 또렷하게 언어로 확인시켜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트렌드를 얼마나 빨리 따라가는지가 아니라, 그 속도 속에서도 나의 호흡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이 시대의 도구를 잘 쓰는 사람이기보다, 도구 속에서도 나의 리듬을 지키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트렌드코리아 2026』는 그 다짐을 분명하게 만들어준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