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보 가계버
결혼 11년차이지만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됐습니다. 물론 시도는 했었어요. 매번 실패로 돌아갔지만. 실패한 이유? 귀찮다거나 성실치 못해서라기 보다는 돈이 새는 구멍을 굳이 찾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예요. 들어오는 수입에 맞춰 지출한다면 좋겠지만 그러기가 어디 쉽나요. 더군다나 병원비나 축의금, 선물 등 예상치 못한 지출은 항상 생기니까요.
뭔가 지르고 싶은데 충분한 돈이 없을 때, 계산기를 두드려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숫자에 무감각해지면 편하죠. 더하고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데, 남는 게 없으면 아무것도 살 수가 없는데, 살 수가 없다면 분명 우울할 텐데 뻔한 이 상황에서 뭐하러 들여다보나요. 보지 않으면 그 막연함에 지르기는 좀 더 담대해집니다. 긁고 나서 수습하자는 마음가짐, 총액만 보자 총액만. 이런 자세였지요.
그런데 최근 가계부를 쓰다 보니 나의 소비생활에 눈에 띄는 문제점들이 몇 가지 있더라고요.
1. '기본적'으로 나가는 돈이 너무 많다.
일명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라고 하죠. 집세(뉴욕의 월세는 가히 살인적입니다), 핸드폰 요금, 전기세, 보험료, 인터넷 사용료, 교육비, 자동차 할부 값 등. 숨만 쉬어도 나가는 이 돈들 때문에 나는 숨 막히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누리고 살기 위함이죠. 좀 더 쾌적하게, 좀 더 편리하게.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을 한 숨을 쉬며 바라보다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전에 어떻게 하면 정직한 방법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동시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지금보다 더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철로 변에 놓여 있는 큰 상자를 바라보곤 했다. 그 상자는 가로 6피트에 세로 3피트쯤 되는 크기로 철로 인부들이 밤에 연장을 넣어두는 곳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형편이 아주 어려운 사람이라면 한 1달러쯤 주고 저런 상자를 사서, 구멍을 두어 개 뚫어 최소한의 공기가 통하게 하고 비가 올 때나 밤에는 그 속에 들어가 뚜껑을 내리면 영혼 깊숙이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_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상자 속에 살아도 얼어 죽을 일은 없대요.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보다 더 크고 호화로운 상자를 빌려서 살며 그 대금을 치르느라 죽을 고생을 하냐는 거죠. 네 식구가 살 만한 1달러짜리 상자는 더 이상 구할 수도 없을 뿐더러 상자 하나를 놓으려면 그만큼의 땅값을 지불해야만 하는 현대의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옵션들을 고민해 보았어요. 층간 소음 걱정 없는 반지하로 이사를 가볼까, 아니면 존 리 대표님 말대로 자동차부터 버려야 할까. 스마트폰 대신 2G 폰을 쓴다면 정말 영혼 깊숙이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어요. 자신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업그레이드는 쉽지만 다운그레이드는 어렵다는 말이 왜 있겠어요, 내 수준에서의 ‘기본’들을 버리는 게 결코 쉽지가 않더군요.
쾌적함과 편리함 따위를 추구하다 포기해 버린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돌아봅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들은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많은 원시적인 즐거움에 대해선 너무 가난한지도 몰라요.
2. 나는 돈을 별로 안 쓴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쓰고 있다.
가계부 작성할 때는 복잡하지 않게 그로서리(마트에서 장 보는 금액)/외식/기타의 세 가지 항목으로만 나눕니다. 매일 지출한 금액을 적은 다음 그로서리에 해당하는 품목에는 주황색, 외식에는 분홍색, 기타에는 파란색으로 하이라이트를 합니다. 이 금액을 한 주 단위로 먼저 정산하고 그 뒤에 한 달 사용금액의 총합을 보는 거죠.
소비할 때는 항상 이유가 있어요. 돈을 좀 아껴보겠다고 다짐한 날에는 장을 많이 봅니다. 외식비를 줄이기 위함이에요. 그런데 한 주 그렇게 살다 보면 억울해지기 시작하죠. 삼식이들에게, "정녕 내 요리하다 죽는 꼴을 볼테냐!" 며 신경질을 내고도 분이 안풀려 다음 주엔 외식을 많이 합니다. 이번엔 장보는 비용이 주는 대신 외식비가 늘어나요. 그다음 주가 되면 ‘내가 쓰는 돈은 오로지 식비밖에 없네’, 라는 생각에 우울해집니다. 식충이도 아니고 먹는 데에만 돈을 써서야 되겠어? 책도 사고, 커피도 사 먹고… 약간의 쇼핑도 합니다. 그로서리/외식은 줄고 ‘기타’가 늘어요. 한 달 뒤 정산을 해보면 항목만 바꾸어 아낄 뿐이지 소비의 총액은 줄지가 않아요. 나는 아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는 말입니다. 최소한 가계부를 쓰면 이런 기가 막힌 상황을 ‘파악하게 되는’ 장점은 있습니다.
3. 항목별 지출 상한선이 없다.
결산만 했지 예산을 짜 보자는 생각은 못했어요. 각 항목별로 얼마 정도까지만 지출하겠다는 상한선이 없다 보니 지출이 들쭉 날쭉하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항목에 선 힘들게 지출을 줄였는데 다른 항목에서 지출이 늘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요. 가계부 작성의 초보자로서 처음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지출 상한선을 정해야 겠어요. 그러면 그 금액 내에서 사용하려고 노력할 테고 총지출도 조금 줄일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지출의 상한선이 없으면 충동구매를 하게 됩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 사야하는 이유는 천만개도 넘어요. 너 분명 그런거 있다고 말해줘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저건 약간 쨍한 핑크인데? 저거는 스타일이 비슷해 보여도 단추가 두 개짜리야.(그 전에 산 건 세 개) 같은 듯 해도 길이감이 좀 다른데? 엉덩이를 덮는게 지금 딱 필요했어. 나는 이런 사람 아니라고 우길겁니까. 우리 안에는 소비의 욕망이 가득 가득 해요. 정말 입을 옷이 없어서 옷을 사나요? 진정 먹을 게 없어 장을 보는 겁니까?
“지금까지 모든 사회는 엄밀하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항상 낭비하고 탕진하고 소모하고 소비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즉, 개인이나 사회가 생존하고(exister)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살고 있다(vivre)는 것은 초과분과 여분을 소비할 때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는 ‘소모(consumation)’, 즉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에까지 이를 수 있는데, 그때에는 특별한 사회적 기능을 갖는다, 가령 포틀라치(북미 *원주민들 사이의 의식화된 증여 및 파괴행위)에서는 귀중한 재화들을 경쟁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사회조직을 공고하게 한다. 콰키우틀족은 텐트의 덮개, 카누,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는 동판을 내놓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그것들을 불태우거나 바다에 던진다. 또한 지금까지 어떤 시대에도 귀족계급은 쓸데없는 낭비(wasteful expenditure)를 통해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였다.”
(장 보드리야르 _소비의 사회).
*원본에는 ‘인디언들’
보들리야르가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Flex’식 소비이지요.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쓸데없는 낭비’의 대가들입니다. 소비의 행위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나의 우월성을 확인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목표금액을 잡아, 앞으로는 낭비하고 탕진하고 소모하는 일을 줄여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가계부 쓰는 일이 절대 헛수고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문득 든 생각입니다만, 돈처럼 말이나 행동도 수치화하여 계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멋대로 내뱉은 말, 나의 거지 같은 행동들을 매달 정산할 수만 있다면 다음에 쓸 때는 확실히 좀 더 규모 있게 꾸려갈 수 있을 텐데요. 가계부를 쓰다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