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늪에 빠지다
제가 얼마나 많은 돈을 아마존에 쏟아부었는지, 가계부를 쓰며 새삼 깨달았어요. 여기서의 아마존이 남아메리카의 정글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아시리라 믿어요. 한 번 지갑을 열면 늪에 빠진 것 마냥, 계속 열게 만드는 이곳.
이 징글징글한 나의 애증의 정글에는 과연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요?
아마존닷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처음 아마존이라는 이름을 택한 이유는 첫째, 알파벳 A로 시작하는 이름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아마존 강의 길고 많은 수량(水量)처럼 다양한 물건을 팔아보자는 의미였다고 해요.
그렇다 하더라도 도서와 음반으로 시작한 아마존이 몇십 년 후 세계 최대의 인터넷 쇼핑몰로 성장하리라는 것을 그는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기업의 성공요인을 이거다!라고 한 두 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기업의 이름은 그들의 이상(理想)을 반영한다는 것, 그리고 이름 자체가 하나의 성공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아마존. 뭔가 간결하고도 왠지 모르게 꽂히는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김에 ‘아마존 우림’의 아마존이 왜 아마존인지 좀 알아보고 가죠. 집에서 가계부를 쓰다가 남아메리카의 열대우림에까지 가 봅니다.
아마존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스페인의 탐험대가 마라뇬 강 주변을 탐사하던 1500여 년 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탐험대원들은 그곳을 지키던 여자 원주민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말죠. 그리고 그곳 여자들의 용맹함이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부족 ‘아마조네스(Amazones)'를 떠올리게 한다 해서 아마존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화 속 아마조네스 여전사들의 용맹함이 어느 정도였냐고요? 이 부족의 여성들은 활 쏘는 데 방해가 되는 한쪽 가슴을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하지요? 아마존은 A와 mazos의 합성어인데 mazos는 유방을 뜻하고요, 접두사 A를 붙이면 하나의 유방을 가진 자들이라는 뜻이 된다고 하네요.
강해서 아름다운 건지, 아름다워서 강한 건지, 아름답고도 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조네스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그녀들의 모습은 그리스 로마 시대 부조의 소재로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각종 영웅담과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요. 저는 보지 않았지만 영화 <원더우먼>도 아마조네스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네요.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가장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열대우림 아마존,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여전사 아마조네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저는 이러한 이미지들이 아마존닷컴의 성공에 얼마나, 그리고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잘 몰라요.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 속 아마존이 다채로움과 풍요로움, 아름다움과 용맹함 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네요.
아마존닷컴은 없는 거 말고는 다 있는, 미국 온라인 시장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가계부를 쓰다가 3탄에서 다루겠지만 저는 아마존의 빅팬이면서도 이 기업의 독점 논란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저를 비롯한 아마존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편리한 구매, 환불 시스템은 유래가 없는 획기적 아이디어임에 틀림없습니다. 총알 배송으로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큰 장점도 아니겠지만 미국에서 프라임 멤버에게 주어지는 빠른 배송만큼 속 시원하고 기분 좋은 서비스는 없을 겁니다. 미국에 살아본 분 들이라면 아메리칸들의 느려 터진 일처리에 뚜껑이 열려 본 경험이 한두 번쯤(두세 번쯤…1,250번쯤) 있으실 거예요. 그런 저의 가슴속 응어리를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던 것이 바로 프라임 멤버를 위한 빠른 배송 서비스입니다. 물론 바이러스가 한참 피크였을 때에는 프라임 배송도 한 없이 늘어졌었습니다만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된 상황입니다.
잘못 배송되었거나 손상된 제품이 배달되었을 때에는 도로 돌려보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계적 대인배답게 이미 받은 물건은 가지거나 버리거나 소비자 맘대로 하게 해주고 새로운 제품을 보내주는 것이죠. 환불 과정이나 제품에 대한 문의 사항이 있을 때는 채팅을 통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전례 없던 Covid-19 위기 속에서 더욱 아마존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조네스가 타깃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활시위를 당기듯, 원하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고 일체의 망설임 없이 결제 버튼을 누르는(100불 이하라면) 저를 보신다면 그 용맹함과 쿨내와 간지를 감당 못하실 겁니다.
그래서 저는 2020년 현재까지, 이러이러한 물품들을 구입하였더라고요.
치약, 치실, 아이들 유산균, 어른 유산균, 물티슈, 벌레 퇴치제, 모자, 소독 패드, 아마존 기카(기프트카드), 마우스 워시(가글), 아이들 도서 및 장난감, 플립플랍(일명 쪼리), 에디슨 젓가락, 바이올린 어깨받침, 한국 브랜드 비비크림, 피스타치오, 수분크림, 바리깡, 미용가위, 이불, 해열제, 배터리, …
유심히 보신 분들은 깨알같이 격리생활의 슬픔도 느끼셨을테고요(바리깡, 미용가위, 소독 패드, 해열제), 무엇보다 대부분의 구매 물품이 지속적 구매가 필요한 소모품이자 생필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제품들에는 subscribe & save 버튼이 있어서 이 버튼을 누르면 일정한 기간 후에 자동 결제/ 자동 배송이 가능하고 약간의 할인도 해주죠. 저는 그냥 필요할 때마다 다시 구매를 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최근 구매한 내역들을 죽 보면서 당분간 아마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겠단 판단을 했습니다. 몇몇 물품들을 지속적으로 구매한 쇼핑 패턴 때문이에요. 주요 구매 항목이 생필품이니까 여기서는 도저히 지출을 줄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달 아마존 크레딧 카드 대금을 갚기가 무섭게 다음 달 카드 대금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기도 하죠. 사람마다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의 기준은 모두 다 다르겠지만 유산균 없는 아침이나 물티슈 없는 낮, 치실 없는 밤 등을 저는 상상할 수가 없답니다. 이런 물건들을 굳이 가게에 직접 방문해 따로따로 사지 않아도 된 다는 건 얼마나 큰 장점인가요. 더군다나 지속적으로 사야 한다면 말이에요.
다음은 제가 관심상품으로 넣어둔 것들이에요.
디지털카메라, 디지털 피아노, 타워형 선풍기, 타이 마사지 툴 세트, 엑센트 체어, 헤어 컬링 아이언, 토마스와 친구들 Tidmouth sheds, 3단계 발마사지기, 메탈 벤치, 전기 물 끓이개, 실내 운동용 자전거….
아마존에서 나의 관심상품을 분석해 본 결과,
나는 어떤 물건의 경우 바로 지르지 않고 고민하는가? 그리고
가구와 전자제품도 아마존이 다 해 먹고 있다. 는 것과
최근 들어 건강 관련 제품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는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려던 물건을 관심상품(아마존에서는 saved for later)에 넣어둘 때는 좀 더 생각하고 구매하기 위해서, 혹은 살지 말지 여부가 확실치 않을 때입니다. 99센트짜리 껌을 살 때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결제 단계로 들어가겠지만(가계부의 고수들은 그러나 단돈 1불, 1천 원도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399.99짜리 카메라를 살 때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이트와 가격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이 물건이 꼭 필요한지 생각할 시간을 갖는 거죠.
저는 쫄보라 그런지 비교분석을 떠나 비싸면 무조건 구입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싼 물건=좋은 물건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비싼 물건을 사면 그만큼 오래 잘 사용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저는 주로 가격이 비쌀 때, 필요 여부를 떠나 장바구니가 아니라 관심상품으로 던져 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나 디지털 피아노의 경우와 같이 고가의 전자제품은 물론이요, 토마스와 친구들 장난감 중에도 쉐드(shed)는 비싸니까 절대 바로 지를 수 없습니다. 물론 비싸지만 꼭 필요한 물건의 경우 관심상품 목록에 오래 올려두고 끈질기게 생각한 뒤 구입에 성공한 경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럴 때는 어차피 필요한 거 빨리 사서 빨리 쓸 걸 이라는 후회가 되기도 하지요.
비싼 걸 절대로 안 사는 사람들 중, 싼 물건이라면 개수와 상관없이 여러 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가계부를 쓰지 않죠. 나는 비싼 거는 손 떨려서 못 사. 그런데 알고 보면 만원 짜리를 100일 동안 하루 하나씩 삽니다. 백만 원이에요. 백만 원짜리는 죽어도 못 산다면서 백일 동안 만원씩, 별 쓸데도 없는 물건들을 사다가 쌓아두고 결국에는 누굴 줘버리거나 버립니다. 전문용어로 이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하죠. 가계부를 쓰기 전의 저의 모습이기도 해요.
미국에서 전자제품 하면 ‘베스트바이’였는데 이제는 아마존이 다 해 먹고 있습니다.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가구를 살 때에도 아마존을 둘러봐요. 저는 최근 엑센트가 될 만한 예쁜 의자나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보기 위해 아마존에 들어갔어요. 특히 매트리스의 경우 한국 기업의 질 좋은 제품이 있어 만족스러운 구매를 할 수 있었죠. 가구도 정말 없는 거 빼고는 다 있어서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관심 상품에 넣어둔 타이 마사지 툴 세트를 보니까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얼마 전 목에서부터 손끝까지 엄청난 신경통이 시작되었거든요. 어렸을 적 할아버지들이 호두 두 개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걸 봤어요. 대체 저건 운동이야, 놀이야?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저도 이제 호두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나 봐요. 발 마사지기와 타이 마사지 세트는 할아버지들의 호두처럼 뭔가 혈액순환에 도움이 될까 싶어 넣어둔 제품이고요, 실내 운동용 자전거는 한랭 두드러기 환자로서 유산소 운동 대신 고려해 본 것이었어요. 40이 다가오니까 진짜, 안 아픈 데가 없네요.
관심상품에 물건을 넣어두는 행위는 신중한 소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매하지 않고 단순히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왠지 위안을 주는 그런 기능이 있습니다. 지금은 살 형편이 못되지만 넣어두고 보면 마치 언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근거 없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죠. 마치 집을 살 돈이 전혀 없는 사람이 부동산 중개소를 전전하는 것처럼요.
오늘은 가계부를 쓰다가 아마존 덕에, 기업의 이름이 함축하고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어요. 혹자는 온갖 추문과 갖가지 의혹 속에서도 구속을 피할 수 있었던 한 연예인의 행운이 그의 이름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죠. (빅토리?) 이름이 존재를 끌고 간다, 뭐 이렇게까지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한 기업의 이름을 지을 때에는 당연히 심혈을 기울 일 수밖에 없겠죠.
또, 장바구니에 들어갔다가 관심상품까지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가계부를 쓰면서 역사도 공부하고 신화도 알고 기업의 경영방식에도 쪼끔 관심이 갑니다. 장바구니와 관심상품을 살펴보니 내가 돈을 어디다 썼느냐, 왜 썼느냐, 얼마나 자주 썼느냐를 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나의 마음과 관심과 상황이 어떠한가도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가계부는 언뜻 보면 숫자의 기록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내 마음에 대한 지도’라 할 수 있어요. 어디에 돈을 쓰느냐를 보면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거든요.
어때요? 아마존의 늪에 빠진 건 유감이지만, 이것저것 배울 수 있지 않았나요? 가계부로 보는 학문 간 통섭, 뭐 이런 게 아니겠습니까. 저도 초보 가계버지만요, 유익이 참 많네요. 모두에게 가계부 작성을 강력히 권장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