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가계부 쓰기

빚 갚는 즐거움

by BRG

다시 꾸준한 가계부 쓰기를 다짐한 후 몇 주가 지났다. 8월 한 달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가계부를 썼다. 한번 밀리면 다시 쳐다보기 싫기 때문에 매일 그날의 소비를 적으려고 노력했다. 가계부 작성을 밀리지 않고 할 수 있었던 아주 간단하고 정말 별것 아니지만 써먹기 좋은 비결 몇 가지를 공유하려고 한다.


가계부는 손이 잘 닿는 곳에,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뭐든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게 사람 마음을 움직이기 마련이다. 한때 나는 하도 휴대폰을 쥐고 있어서 마치 휴대폰이 나의 손의 연장(extension)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손 끝에 항상 스마트폰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의도적으로 휴대폰은 더 멀리, 책은 더 가까이 두려고 한다. 읽고 있는 책 한 두 권을 늘 테이블 위에 올려 둔다.


가계부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곳에 두면 지나다니면서도 ‘아, 가계부 써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책장 깊은 곳에 처박아 두었다가는 꺼내기도, 열어보기도 싫어진다. 그러면 밀린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식탁 가장자리에 가계부와 요즘 읽고 있는 책 한 두 권을 놓아둔다. 테이블에 뭐 쌓아두는 걸 빚 쌓는 것만큼 싫어하는 남편의 눈치가 좀 보이지만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자꾸 열어본다, 괜히 열어 본다


이유도 없이 가계부를 자꾸만 열어보는 것도 가계부를 꾸준히 작성할 수 있는 좋은 팁이 된다. 우리가 ‘휴대폰 처돌이’가 된 것은 쉬지 않고 휴대폰을 열어보기 때문이다. 카톡카톡카톡이 울리고 이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와서이기도 하지만 아침에 다 본 뉴스를 괜히 또 들어가 보고 페북을 보고 인스타를 보다 유튜브까지 자꾸자꾸 들어가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리에 앉아 가계부를 계속 들여다본다. 어제 뭐 샀더라? 돌아본다. 가계부 한 편에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이런 빌 게이츠의 뼈때리는 말도 써 두고 말이다. 그러면 가계부랑 좀 더 친해지는 기분이다.


게다가 자꾸 들여다봐야 현실 직시가 된다. 월급 들어왔으니까 돈 좀 써도 되겠지 이런 환상이 싹 사라진다. 나는 요즘 집에서 딱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기 시작했다. 탑이 아주 짧아서 뱃살과 겨드랑이 살, 옆구리살이 다 드러난다. 너무 꽉 달라붙는 운동복 바지를 늘어진 뱃살 위로 끌어올릴지 뱃살 아래 틈에 끼워 넣을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운동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운동을 할 때마다 내 몸 상태를 제대로 보기 위함이다. 제대로 보면 제대로 알게 되고 어떻게든 바로 돌려놓고 싶어 진다. 가계부도 마찬가지다. 자꾸만 들여다보아야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이 보인다. 어디가 비만인지, 부채를 줄이고 자산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텐션을 끌어올려주는 음악을 들으면서 쓴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운동할 때 듣는 음악’을 치면 에너지 뿜뿜 신나는 비트 음악, 아드레날린 지방 터지는 음악 모음, 핵신나는 아이돌쏭 플레이 리스트 같은 게 잔뜩 나온다. 요즘 운동할 때 듣기 시작했는데 이걸 운동할 때만 들을 필요는 없다. 가계부 쓰려니 골치 아프고 괜히 늘어질 때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쓰면 확실히 뭔가 힘이 난다. 없는 돈이 샘솟을 것만 같다. 빚도 다 갚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가계부를 쓰는 팔에 근육도 붙고 있는 거 같은데 이건 기분 탓인가.


가계부를 쓰면서 금융지능을 높여줄 책들을 같이 읽는다


나는 몇 주 동안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롭 무어의 <머니>, 필 나이트의 <슈독 Shoe Dog>를 탐독하면서 가계부를 썼다. 돈 들 데가 많아 심난하거나, 돈을 너무 안 써서 쓰고 싶어 미치겠거나,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서 우울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때 이런 금융 지식을 쌓게 해주는 책들을 항상 옆에 두고 읽으면서 가계부를 써 나가면 도움이 된다. 여기에 기업가의 자서전이 들어가도 좋다. 수중에 아무것도 없던 청년이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게 되었는지 영화 같이 풀어놓은 썰에 빠져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꿈을 꾸게 된다. 나도 뭔가를 해봐야겠다! 파이팅이 넘친다.


겨우 한 달 꾸준히 했을 뿐인데 벌써 나의 마인드셋이 달라졌다. 돈을 안 써도 이제 우울하지가 않다. 아니, 정확히 표현해서 이제 더이상 우울하다고 해서 돈 쓰며 풀지 않는다. 가계부를 쓰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조금씩 돈을 조종해 나가는 나를 발견하니까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렸다. 얼마 전 목돈 들어올 일이 있었다. 다른 때 같았다면 그 돈의 크기만큼 나의 욕망도 늘었을 것이다. ‘이거 가지고 뭐하지?’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빚 갚는 데 쓸 수 있다니 정말 행복했다.(tmi: 집을 샀다면 은행에 몇 십만불(몇 억)빚이 있겠지만 우리는 다행히 아직 월세 살이 이니까 그렇게 큰 빚은 없다.) 돈을 갚기 위해 휙휙 계좌이체를 하고 신용카드 값도 결제일 전 미리미리 냈더니 세상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빚 갚는 즐거움이 이거로구나!


매일매일 탱크탑에 쫄바지를 입고 가계부를 쓰려고 한다. 비트 120을 팍팍 찍어주는 신나는 음악을 틀고 삐져나온 뱃살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쥔다.


‘언젠가 다 태워주리라! 뱃살도! 빚도! 세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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