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et money run your life!
작년 가계부 작성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것까지는 참 좋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가계 운영의 성적표를 받는다면 F나 겨우 면한 꼴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계부를 쓰면서도 여전히 감정이 이성이나 논리에 앞섰기 때문에 규모 있는 가계 운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계부에 웬 감정이나 이성이냐 싶겠지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어본 사람이라면-나도 완독은 못했고 급한 마음에 Audible에서 영어책을 구해 ‘귀로’ 읽는 중이다- 나의 이 말이 뭔 말인지 찰떡같이 이해할 것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돈은 크게 변함이 없다. 그러나 욕망의 여신이 항상 문제의 근원이다. 그녀는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가 월급만 들어오면 귀신같이 찾아와 발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잘 있었어?”
“말 시키지 마.”
“왜 또 철벽이야~ 너 지난번에 주름도 늘고 다크서클도 장난 아니라며? 살쪄서 얼굴도 커졌더라. 월급 들어왔으니까 화장품 몇 개 사지 그래? 유투버 조효진… 거기서 보니까 화장으로 기가 막히게 커버했던데… 쉐딩으로 얼굴은 더 작고 코는 더 오뚝하게 보이게 할 수 있잖아. ㅇㅇ에서 새로 나온 아이쉐도우 컬러도 진짜 이쁘던데?”
“웃기지 마, 살 빼는 게 급선무야. 화장으로 가려봤자 얼마나 가려진다고… 나는 그냥 다이어트나 할래.”
“얘는! 가려봤자라니… 조효진이야, 조효진이라고… 이번 <여신강림> 메이크업 못 봤어?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고, 변신이더라. 조효진 따라 화장만 잘하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 올리브영에서 60달러 이상 주문하면 배송비가 공짜라니까!”
“배송비가 공짜? 한국에서 오는데도?”
“그렇다니까, 저렴한 한국 화장품을 60불 이상만 사면 무료 배송인데 이거 거저 아니냐? 살은 천천히 빼고 일단 화장으로 더 젊고 예뻐지자, 살 빼는 거 너무 오래 걸려. 그리고 지금부터 이런저런 화장품을 구비해 두어야 진짜 살 빼고 더 예뻐졌을 때 화장품 구하러 다니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거야~”
‘…아.. 욕망의 여신 말이 구구절절 맞다! 그럼 오래간만에 올리브영이나 들어가 볼까…’
이런 식인 것이다.
머리로는 안다. 이번 달도 마이너스겠구나. 그러나 계좌에 월급이 입금된 순간, 늘어난 숫자만 눈여겨보고 차감될 숫자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아, 까짓 거 그냥 사버려. 그동안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리고 내가 그 정도도 못 사?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나는 소비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편이다. 돈을 쓰고, 뭘 사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기쁨은 한시적이라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돈을 써서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된다면 좋을 텐데 소비는 스트레스에 대한 완벽한 처방이 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계속 불필요한 소비를 하고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래를 위해서 오늘 더욱 절약했더니 스트레스가 풀리네. 정말 기쁘지 뭐야!”라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지난 1년 간 가계부 작성을 꾸준히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돈을 많이 썼다는 자괴감으로, 귀찮아서, 게을러서 가계부를 쓰다 말다 했다. 또 재정 관리라는 개념은 이미 나에게 어렵고, 재미없고, 힘든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핑계만 생기면 들여다보는 것을 피했으니까. 그러면 왜 나는 이 애증의 가계부 쓰기를 다시 시작하려 하는가?
얼마 전 예상치 못하게 거금 들어갈 일이 생겼다. 당연히 이런 때를 대비한 돈은 없었다. 잊을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두렵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리 고민해봐야 답은 없었다. 돈 때문에 시작된 우울감이 지속되자 급기야는 만사에 짜증이 났다. 평소에 내가 가진 자존감은 ‘돈, 그까짓 게 나를 어쩌지 못해!’였지만 그건 그야말로 ‘근자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이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하려면 돈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번번이 실패하며 살던 나는 이번 위기에도 여전했고 그런 나 자신에 그야말로 신물을 느꼈다.
제어할 돈이나 있어서?라고 누군가 나를 조롱할지 모른다. 그러나 많든 적든 내가 돈을 제어하지 못하면 돈이 나를 제어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 아니, 슬프게도 벌써 그걸 체험하며 살고 있다.
적은 돈을 잘 운용하면 큰 돈이 생겼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제어하는 문제는 가난한 자나 부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누구든 돈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비할 욕망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인생 폭망은 예정된 시나리오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 일수록 그것을 지혜롭게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을 본다. “나는 돈 막 펑펑 쓰고 살아도 돈이 남는데?” 플렉스의 극치 돈지랄도 풍년인 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런 자에게는 “그래서 누군가는 그 구멍 땜빵하려고 너 대신 존나게 노력하고 있을 거다”라고 속으로라도 말해주어야 한다.
가끔 어떤 엄마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아이들이 참 착해요. 말도 잘 듣고. 아무리 엄마가 그렇게 키운 것도 있지만 본래 그 집 애들이 그렇게 태어났죠?”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자주 인간이 악한 존재인가를 깨닫는지 그리고 아이들을 훈계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의 대답을 대신한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인 것처럼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엄마의 말이라면 무조건 “네!”로 순종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착각하는 엄마들은 보통 자신의 자녀가 제멋대로인 것도 교육의 실패라 인정하지 않게 마련이다. 차라리 자신의 아이가 원래부터 악마였다고 믿는 것을 선택할지언정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천사와 악마의 운명은 교육의 결과로 갈린다. 천사와 악마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전문적인 지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탁월한 교육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갑자기 장황한 교육 얘기였지만 사람을 다루는 거나 돈을 다루는 거나 매한가지인 것 같기 때문이다. “원래 부자였죠? 복이 많으십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셨다지만 원래 집안 ‘자체’가 좀 돈이 많았죠?”는 통할 수 없다. 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치열한 공부와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다. 경제생활은 문학도, 감정도, 기분도 아닌 지극히 이성적 활동이다. 집에서 하는 교육이라고 아무렇게나가 아니듯 살림살이도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돈 문제도 교육처럼 얄짤없이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번 위기를 통해 배웠다.
어쨌거나 팩트는 내가 다람쥐 쳇바퀴 아니, 로버트 기요사키가 말하는 ‘쥐경주’ 트랙 위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이놈의 쥐경주 트랙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먼저 무얼 해야 할까? 고수들에게 주워들은 대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부터 찾아 읽었다. 저자는 말했다. 돈이란 평생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직장을 갖고 돈을 버는 것은 짧은 기간의 문제이지만 경제공부는 평생의 공부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시 가계부를 펼치는 이 시점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기만을 바란다.
정신은 대충 무장됐으니 이제 하나씩 실천해 가겠다. 욕망의 여신을 완벽하게 제압하거나 매일 휘파람을 불면서 가계부를 쓰겠다는 무리한 약속 따윈 하지 않겠다. 그러나 돈을 제어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짐만은 굳건하다. 일단 가계부 작성을 나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고 그것을 절대 배제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돈 하나도 안 썼으니까 나 돈 벌었네!’라고 말이다. 항상 나는 생각해왔다. ‘돈을 못 쓰다니 정말 돌겠구만!’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생각의 전환이 제법 효과를 보는 것 같다.
이번 한 주의 목표는 하루에 한 챕터씩 경제 관련 책을 읽으면서 관련 지식을 쌓기, 가계부 작성을 게을리하지 않기, 냉장고 파먹기 정도이다. Don’t let money run your life! 나는 다시 가계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