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어짜지 말아요

by BRG


가득 차면 자연 넘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꾸만 짜내게 됩니다. 매일 일정 분량을 써 보자는 나와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에요. 읽어주는 이가 있다는 든든함. 몇 안 되는 독자인데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에 좀 흥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가볍게 눌러 치약이 나오지 않을 때 남편과 내가 보이는 반응은 정반대예요. 그는 어서 새 치약을 사자고 해요. 나는 당분간 잘라서 쓰죠. 치약의 밑부분을 돌돌 말아 숨어있던 약발(?)까지 끌어올리고, 그러고도 더 이상 치약이 나오지 않으면 배를 갈라요. 갈라서 칫솔로 쓸어내면 얼마간 사용할 만한 분량은 나오죠.

남편은 검소한 가정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익숙한 치약 짜기를 이제는 죽어도 하기 싫대요. 반대로 우리 집 화장실엔 동시다발적으로 나뒹구는 치약이 늘 두세 개였거든요.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동시에 여러 치약을 사용하다 보면 처음이 누구였는지 분간해낼 수가 없어요. 그건 혼란스러운 일이에요. 칫솔질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맘대로 나뒹구는 치약처럼 덩달아 내 하루에도 질서가 없어져 버릴 것 같았거든요.


하긴 그뿐만은 아녜요. 나는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사람도, 치약이 닳기 전 미리 치약을 구비해 두는 사람도 아니에요. 배를 가르는 건 말하자면 시간을 벌기 위한 꼼수지요. 새 치약을 살 때까지.

새 치약을 짤 때면 힘을 들이지 않아도 줄줄 나오잖아요. 안에 치약이 꽉 차 있으니. 그래서 오히려 헤프게 되기도 하지만 소설가 백영옥은 ‘흘러 넘쳐도 좋아요’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쓰는 편지>에 이렇게 썼답니다.


"그런 삶에는 시간을 재는 일 같은 것이 없어서 1년이든 10년이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술가라면 계산하거나 셈하지 않으며, 억지로 수액을 짜내려 하지 않고 봄의 짓궂은 비바람 속에서도 여름이 안 오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일 없이 침착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성숙해야 합니다."


"여름은 언젠가 오긴 하겠지만, 인내심 있는 사람, 즉 마치 자기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기라도 한 듯 아무 걱정 없고 여유 있는 사람한테만 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매일같이, 그리고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고통 속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심이 전부라는 것을 말입니다."



계산과 셈이 없는 글. 불안이 아닌 글. 자기 앞의 시간을 영원처럼 생각할 때 나오는 글. 릴케는 그게 예술이라고 하네요. 얻다 대고 네가 예술 타령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라고 예술하지 말란 법 있나요.


얼마 남지 않은 치약을 쥐어짤 때마다 내 칫솔에 묻어나는 치약의 양이 내 힘의 그것과 비례하리라 기대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쓸어 내고 또 쓸어도 칫솔 위에 얇게 펴 발라질 뿐이죠. 시간이 좀 걸려도 새 치약을 사면 어때요? 꾸역꾸역 배를 가르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긁어모아 봤댔자 빈약한 글이 될 테니까요. 미리미리 치약을 좀 구비해두면 어때요? 평상시 넘치게 읽는 사람은 넘치게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치약을 동시다발적으로 쓸 때 찾아올 카오스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찌 됐건 우리는, 떠오르는 모든 것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고 정돈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이지만 사랑은 종종 배신을 때린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해요. 즉각적인 반응에 집착할 때 우리는 쥐어짜게 됩니다. 단절이 가져오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것이죠. 이는 나와 독자 모두를 속이는 일 입니다. Walk the talk. ‘네가 말한 그대로 살라’는 것 아니겠어요? 더 이상 쥐어짜지 맙시다. 말하는 대로, 쓰는 대로 살려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