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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Nov 08. 2020

아빠, 제발 들어가서 자

1분 만에 그를 잠들게 만드는 방법

해가 저물고 어느덧 깜깜한 저녁이 되면, 거실에 놓인 기다란 소파와 나의  부친 삼진씨는 한 몸이 된다. 열 시 이전엔 체크 파자마의 그가 모로 누워  TV 속에 들어갈 듯 빠져있는 모습을, 열 시 이후엔 그 편한 침대를 놔두고 소파와 물아일체 된 삼진씨를 만날 수 있다. 소파에서 스르륵 잠드는 순간의 아늑함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언제까지고 그를 그곳에서  자게 놔둘 순 없는 노릇이다. 


" 아빠... 들어가서 자. "

" .... 드르렁 쿠우~~~~~~~~ 뭐? "

" 들어가서 자라고... "

" 알았다~~ 아라따고.... 푸~~~ "

" 아빠! 이럴 거면 침대 왜 샀어... 제발 들어가서 자! "

" ... 여프로... 나온네이~! (옆으로 나와라)"

" ...? "


그는 꿈속에서도 일터에 있다. 짜증스럽게 나의 손길을 뿌리치며 알았다고 하면서도 그럴 의지가 딱히 없어 보이는 그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도 분명 껄껄 깔깔 웃으며 나와 얘기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손에 쥐어진 리모컨을 슬쩍 빼내어 볼륨을 한참 줄인 후 채널을 돌린다. 


" 냅둬!! 내 다 보는 기다. "


아니 그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던 삼진씨가 어느새 일어나 앉아 눈을 부릅뜨고 있다. 


" 아빠 자길래 돌렸지. "

" 안 잤다. 눈 감고 보는 기다. "


나는 별말 없이 그의 손에 다시 리모컨을 쥐여준다. 그를 1분 만에 다시 잠들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거 베고 편하게 누워서 보라며 쿠션을 하나 놓아두고 툭툭 두드린다. 그는 온순하게 내가 놓은 쿠션 위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1분 뒤... 한 치의 예외도 없이 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삼진씨의 TV 취향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안 맞아왔다. 그가 보는 프로그램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인간시대 같은 휴먼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심란한) 범죄 다큐멘터리, 여행 채널(특히 아프리카 오지 쪽), 개콘. 요즘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일말의 교집합도 없이 깔끔하게 나의 취향과 비껴 나갈 뿐만 아니라 옆에서 듣고 있자면 심란하기 그지없다. 그의 인생 최애 템이 TV인 까닭에 우리 집은 늘 TV 부자였다. 영화관 못지않은 무시무시한 크기의 거실 TV, 지난 집에서 안 버리고 가져온 삼진 씨 전용 안방 TV.  그 TV가 안 나올 경우를 대비해 창고에 모셔둔 아주 오래된 TV까지.  TV 소리는 그가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ASMR과도 같은 존재였다. 오랜 세월, 내 하루의 마무리는 그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앗아 전원을 끄는 일이었다. 아빠, 제발 들어가서 자!라는 반복되는 주문과 함께. 내일도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나간다는 삼진 씨. 아직 별빛이 채 가시지 않은 깜깜한 새벽, 그는 어김없이 벌떡 일어나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의 셔터를  열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남은 시간을 채워갈 것이다.  오늘도 나의 부추김에 비몽사몽 겨우 일어나 엄마 정숙 씨와 나의 손에 떠밀려 안방으로 들어가는 그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오늘 밤 꿈에선 부디 일하지 않기를 바라며. 


바로 잠든 줄 알았는데, 또다시 안방 TV 소리가 들려온다. 정숙씨까지 잠들어 버리면 저 TV는 결국 또 내가 꺼야겠지. 내일 저녁이 되면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 한 듯, 데자뷔와도 같은 똑같은 장면이 반복될 것이다. 삼진씨의 딸이 거실로 나와 둘둘 말린 요가 매트를 풀며 그의 손에 아슬아슬하게 들려있는 리모컨을 빼낼 것이다. 그리곤 말하겠지. 




아빠,
제발 들어가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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