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화백의 예술 세계는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의 여정이었다.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그의 선택은 단순한 예술적 취향이 아닌 깊은 철학적 사고의 결과였다.
20세에 도쿄로 유학을 떠난 유영국은 그곳에서 가장 전위적인 미술 사조인 추상주의를 접하게 된다. 당시 추상은 일본에서도 이해받기 어려운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유영국은 이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유'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 추상회화는 외부 세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였던 것이다.
유영국의 선택에는 그의 뛰어난 논리적 사고도 한몫했다. 그는 "예술가는 10년 또는 20년 후 자기가 한창 활동할 때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미리 냉정하게 예측하여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미술가가 아닌, 시대를 앞서가는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준다. 실제로 그의 예측대로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한국 미술계는 추상미술이 대세가 되었고, 그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유영국의 예술 세계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산'이라는 소재다. 그는 김환기, 이중섭 등 '신사실파'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의 자연, 특히 '산'을 자신의 추상 세계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산에는 뭐든지 다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그리고 다채로운 색"이라는 그의 말처럼, 산은 그에게 무한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유영국은 수십 년 동안 산 앞에서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창조하며 고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는 단순히 자연을 그리는 것을 넘어, 자연과 예술가가 하나가 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말년의 유영국은 "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어. 세상에 태어나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닌, 평생 추구했던 '자유'에 가장 가까운 행위였던 것이다.
유영국의 마지막 작품 "상승하는 최후의 산"은 그의 예술 인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하얀 삼각형의 산은 마치 그의 생과 혼이 위로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자유를 향한 한 예술가의 평생의 여정이 완성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가 유영국의 작품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색채와 형태를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자유를 향한 한 예술가의 치열한 여정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유영국의 그림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창작의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천재적인 색감 조합과 기하학적 도형의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과 도전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