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런던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만큼 다양한 가치관과 신념들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김새도, 문화도,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아무렴, 피부와 머리색이 같은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사회에도 잡음은 있기 마련인데 다인종 사회에서는 오죽할까.
이민자의 신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에게 인종차별은 피할 수 없는 옵션이다. 그건 런던에서도 마찬가지다. 런던에는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어서 그런지 인종차별의 형태도 제각각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인종차별이 있는가 하면 '내가 방금 인종차별을 당한 건가?' 알게 모르게 기분이 찝찝한, 미묘한 인종차별 (subtle racisim)도 존재한다. 나와 조쉬는 신혼 생활을 런던 중심부와는 제법 거리가 있는 외곽에서 시작했다. 중산층의 백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깨끗하고 평온한 동네였다. 그런데 그 동네의 우체국에만 가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직원 중 한 명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와 유독 달랐던 것이다. '헬로', '땡큐', '바이'와 같은 기본적인 인사는 바라지도 않았다. 내 차례만 되면 나와 일절 말을 섞지 않았고 거스름돈을 던지다시피 하며 줬다. 나에게만 영수증을 주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처음에는 이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갈 때마다 태도가 이러니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직원의 태도를 확인해 보고 싶어 다음에 우체국에 갈 일이 생겼을 때는 남편과 함께 동행했다. 그런데 세상에, 영국인 남편을 데려가니 그 사람의 태도가 영 딴판이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하는가 하면, 우체국에서 새로 나온 상품까지 소개하며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비로소 그때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걸 느꼈다.
나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대놓고 나에게 눈을 찢으며 "Chink!"라고 욕하는 십 대 청소년들도 겪은 적이 있고 버스에서는 다리로 내가 가는 길을 막으며 "Go back to your fucking country!"라고 욕하는 마약 중독자도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보다 오히려 우체국에서 겪은 인종차별이 더 기분이 나빴다. 비행 청소년이나 마약 중독자가 좋은 가정환경에서 온당한 정규교육을 받으며 살았을 확률은 적다. 아마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증오에 의한 범죄 (hate crime)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고스란히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봐줄 순 있다. 그런데 사회 공공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원은 다른 경우다. 영국 우체국에 지원하려면 못해도 공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해야 하는데 그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자신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이민자에 대한 자신의 편견과 신념 때문에 사람을 차별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분노하게 했다.
런던에서의 인종차별은 브렉시트가 힘을 얻으며 조금씩 더 악화되는 듯했다. 2010년 중반부터 UKIP (영국독립당)이라는 극우당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더니 EU 의회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가장 큰 당이 되었다. UKIP은 보수당 중에서도 극우 성향의 인사들이 탈당해 만든 단체이고 '인종차별주의당'이라는 별명을 가진 단체이다. 이들이 EU 의회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당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지만 이때만 해도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농담 같았던 브렉시트가 국민투표에서 현실이 되고 2020년 1월, 영국이 정말 EU를 탈퇴하면서 이민자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태도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브렉시트가 유럽에서 오는 이민자들을 겨냥한 것이라 해도 영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반(反) 이민주의'정서는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마음까지 얼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브렉시트 직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동아시아계 이민자들까지도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코로나 1차 웨이브가 끝나고 다수의 영국인들은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 직후에 2차 웨이브가 오면서 영국도 실내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지만 나는 1차 웨이브 때도 한국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마스크를 꼭 쓰고 다녔다. 동아시아계 여자가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니 사람들이 좋게 볼리가 없었다. 그날도 마스크를 쓰고 장을 보고 오는데 어떤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1차 웨이브가 끝났는데 왜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요? 쓰고 다닐 필요 없을 텐데요."라고 대뜸 말을 걸었다. "마스크를 쓰는 건 개인의 자유인데요." 짧게 대답하고 집에 후다닥 걸어왔는데 혹시라도 이 남자가 뒤에서 나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머리에서 식은땀이 났던 적이 있다.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까지 무서워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코로나 동안에는 나도 모르게 몸을 사리고 움츠러들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런던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는 8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2020년에는 영국전역에서 일어나는 증오 범죄의 4분의 1이 아시아계 이민자를 타깃으로 한 범죄였다고 한다. 2023년 현재, 코로나는 더 이상 우리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유롭게 일상을 누리고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됐다. 런던 곳곳에서 다시 한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게 됐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들리는 한국어가 반갑기만 하다. 이제 몇 년 후면 코로나는 역사 교과서에나 실리는 하나의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잊고 싶지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일례들을 통해 목격했던 영국 사람들의 민낯을. 이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는 인종을 바탕으로 한 차별이나 범죄가 없어질 수 있다면 나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내 모국에 내가 원치 않는 인종의 사람들이 자꾸만 들어와서 사회를 어지럽힌다면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이 당연히 곱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고 그 생각이 절대 폭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 누구에게도 사람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를 권리는 없으니 말이다. 물론 이민자들도 법적으로 타당한 신분을 가지고 성실하게 세금을 내며 그 나라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협조해야 할 것이다.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산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가끔씩 이런 인종차별 이야기를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하다 보면 "너 거기서 어떻게 살아?!"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면 친절한 다수의 사람들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여전히 이민자들에게 따뜻한 대다수의 사람들, 내 이웃들과 친구들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고. 인종차별은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겠지만 우리의 다음, 또 그다음 세대를 위해 숙제의 양을 조금씩 줄여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애정 어린 이해나 시선을 종용하기 보다도 그저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회, 그런 사회를 위해 오늘도 한 번 더 용기를 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