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칼린 토마스 -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나의 아이덴티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by 박보람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오랜만에 기억에 남을 전시를 봤다. 길이 기억하고 싶은 이 전시 덕분에 카카오계정 비밀번호를 찾아 브런치에 글도 올려본다. 이번에 본 전시는 미칼린 토마스의 'All about love'였다. LA의 더 브로드 갤러리와 공동 전시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다. 운 좋게도 전시 오프닝 날에 맞춰서 갔더니 갤러리 내에서 작가가 언론 인터뷰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전시를 보는데 예전에 테이트 모던에서 본 루바이나 히미드가 생각났다. 아마도 화려한 색감의 작품들과 그들을 둘러싼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아이덴티티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고 그것을 글이나 그림으로 풀어낸다. 사실 예술이라는 종목 자체가 본인의 정체성과 삶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 없이는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고, 결과물에 그것들에 대한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이어서 작가의 아이덴티티와 예술은 뗄레야 뗼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아이덴티티는 예술에서 그렇게 흔하게 거론되는 주제이지만 이 작가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흑인이자 동성애자인 작가의 아이덴티티는 작품의 주가 되는데 어찌 보면 고되고 민감한 주제를 너무나도 따뜻하게 바라본다. 냉소적이거나 자조적인 분위기보다는 친밀함과 애착의 눈길로 작품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그 시선이 나를 따스하게 휘감았다. 자신의 주변 인물을 오마주한 작품들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그대로 느껴지고, 흑인이라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사랑이 그대로 묻어나 보는 사람까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전시였다.


전시장을 떠날 때쯤엔 작가의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특히 해외생활을 하면서 내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기에 더 몰입이 되었다. 영국에 살면서 '내가 백인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금발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나에 대한 대우가 좀 달랐을까?'란 생각을 종종 한 적이 있다. 내 아이덴티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허상의 것이란 걸 너무 잘 알면서도 그런 공상을 했다. 한국에서는 전혀 해 보지 못한, 할 필요도 없는 상상에 빠져드는 내 자신을 보며 해외 생활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굳건한 사랑과 지지가 필요하겠단 깨달음도 얻었다. 어쨌든 남의 것에 침 흘리며 그들의 아이덴티티에 눈독을 들여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미칼린의 다부진 마인드와 신념이 부럽기만 하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친구가 내게서 처음으로 한국인의 느낌이 난다고 했다. 그동안은 내가 외국인 같았다고. 그 말이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내게 많은 질문을 던져줬다. 한국인 같다는 게 뭘까? 나의 어떤 단면들이 모여서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걸까? 이제 영국 생활 만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나를 따라다는 그림자 같은 것이기에. 그런데 이 전시를 보고 나니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는 찾은 것 같다. 영국에서의 나는 한국인 ethnicity의 아시안 여성 이민자이고, 한국에서의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본토 한국인이면서 해외에 거주 중인 사람이다. 그 사이의 간극은 어쩌면 이 짧은 글로, 몇 장의 사진으로 남겨진 근거로 가늠하기엔 터무니없이 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 하나, 눈금이 그어진 자 없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어디에서 살든지 간에 하나의 부분적인 아이덴티티로 나를 표현하기엔 사람은 너무나도 입체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레이어들과 그 레이어들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단면들이 모여 나를 구성한다는 것.


그러니 나는 단지 그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나의 옹골진 아이덴티티를 사랑해 주면 그만인 것이다. 어쩌면 양파처럼 그 많은 레이어들을 하나씩 부수고 벗기면서 그 안에는 뭐가 있을지 알맹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몇 장의 부분적인 단면들이 모여 '나'라는 입체적인 사람이 만들어졌는지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으니까. 그 과정이 비록 힘들지라도 미칼린이 보여준 것처럼 따스한 시선으로, 친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나를 바라봐 줄 것이다. 되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문장으로 수식되는 그런 사람으로 늙어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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