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기도 쉽지 않은 요즘, 기분 전환을 위해 평소에는 즐기지 않았던 팝 음악을 종종 찾아 듣고는 합니다. 외국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를 찾아보는 일도 꽤 재미있는데, 오늘은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This Is How We Do” 중 추상 미술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케이티 페리가 입은 옷과 화면의 배경은 20세기 초, 초기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을 연상케 만듭니다.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는 구상 미술과는 달리 추상 미술은 점, 선, 면, 색채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추상적) 조형 요소들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그림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추상 미술은 작가의 폭발하는 감정을 중요시하는 ‘뜨거운 추상-서정 추상’과 논리와 이성을 우선시하는 ‘차가운 추상-기하학적 추상’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어요. 이 두 갈래 중 몬드리안은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이끈 중요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몬드리안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신지학협회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신지학’은 일종의 종교 운동으로 세계 각지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을 찾아냄으로써 신의 뜻을 규명하려는 목표를 가진 학문입니다. 신지학에서는 우주를 음양의 대립과 조화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며, 특히 ‘여성적 에너지-수평’과 ‘남성적 에너지-수직’이 우주를 이루는 보편적인 요소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몬드리안은 신지학이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의 회화를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를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제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색채 역시 삼원색(빨강, 파랑, 노랑)과 삼무채색(검은색, 흰색, 회색)만을 사용하여 화면을 구성하지요.
몬드리안은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마치 신지학이 다양한 종교에서 하나의 본질을 찾아내려 하듯) 본질적으로는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신념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그 신념은 마치 종교와도 같아서 자신의 규칙–수평과 수직, 삼원색과 삼무채색-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주려는 태도를 끝까지 고수했습니다.
몬드리안이 나무를 묘사하는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면 몬드리안의 추상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10년작 <붉은 나무>는 제목을 보지 않아도 나무를 그린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지요? <회색 나무>(1911)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1912년작 <꽃 핀 사과나무>를 제목 정보 없이 마주하게 됐다고 상상해보세요.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이 화면에서 단번에 나무를 찾아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나무 구성 II>(1912)는 어떤가요? 제목 없이는 이 그림이 나무를 소재로 한 것임을 알아채기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한 <나무 구성 II>의 경우, <꽃 핀 사과나무>보다 곡선이 줄어들었고, 색채 또한 감축되었습니다. ‘나무’라는 대상을 그리는 데 있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수적 요소들은 모두 생략하고, 수평과 수직의 선, 그리고 제한된 색채만으로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려는 몬드리안의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1930년작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입니다. 뮤직 비디오에서 페리가 입은 옷은 몬드리안의 이러한 패턴을 가져온 것이지요.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면은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색채도 삼원색, 삼무채색만 사용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뜨거운 추상’처럼 즉흥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듯 그리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화면의 질서를 계획하여 가장 균형적인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몬드리안이 실제 작업했던 화실 역시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추상의 공간을 실제로 옮겨올 만큼 자신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생활했던 몬드리안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금욕적이고 절제하는 삶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들로 디자인된 옷을 입고 춤추는 팝 가수를 보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