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약 110여점의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품으로 이루어진 전시는 일곱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관람객을 피카소의 “신화 속으로(Into the Myth)” 안내해줍니다.
첫 번째 섹션은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혁명의 시대’로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입체주의는 초기(1907-09), 분석적 입체주의(1910-12), 종합적 입체주의(1912-14)의 세 시기를 거치며 변화를 보여줍니다. 입체주의 초기는 “자연의 모든 요소는 구, 원뿔,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던 세잔(Paul Cézanne)의 영향을 받은 풍경화 시기로, <언덕 위의 집>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풍경을 단순한 입방체(cube)로 환원시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돌린을 든 남자>는 분석적 입체주의 시기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먼저 그림의 대상이 되는 ‘악기를 든 남자’를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봐야 해요. 그 분석을 토대로 대상을 조각조각 ‘해체’한 후 해체한 조각들을 다시 ‘재조합’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그림에서 피카소가 해체한 후 재조합한 ‘만돌린’이나 ‘남자’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피카소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그 대상을 이루고 있는 많은 조각들을 분석했지만 각각의 조각들이 너무 작아지다 보니 오히려 무엇을 분석한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지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한 피카소는 <기타와 배스 병>과 같은 종합적 입체주의 작품을 제작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조형방식이 바로 ‘파피에콜레(Papier collé)’입니다. ‘종이를 붙인’이라는 뜻의 이 용어는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매체였던 물감 이외의 것, 벽지나 신문지, 혹은 악보나 상표 등의 종이를 붙이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해체의 정도가 너무 심해져 어떤 대상을 분석한 것인지조차 모르게 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화면에 실제의 종이 오브제를 붙임으로써 일종의 현실감을 부여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공간은 네 번째 섹션의 ‘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업’이었어요. 피카소는 50,000여점의 예술작품을 남겼는데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같은 회화 뿐 아니라 드로잉, 판화, 조각, 그리고 도자기를 포함한 수치입니다. 이 중 접시, 꽃병, 그릇, 항아리 등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 작업은 3,500여점 이상으로 피카소의 끝없는 호기심과 예술적 재능을 확인케 합니다. 1946년 피카소는 남프랑스에 위치한 발로리스(Vallauris)로 여름 휴가를 떠나는데요, 이 곳은 원래 도자기로 유명한 마을이었습니다. 피카소는 특히 수잔, 조르주 라미에 부부가 소유한 마두라 공방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에 매료되어 자신의 도자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무려 6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도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는 피카소의 태도가 그를 ‘현대미술의 신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 것이겠지요.
간략하게 살펴본 두 섹션 이외에도 고전주의 양식으로 그린 아들의 초상, 피카소가 사랑했던 여인들의 초상, 그리고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한국에서의 학살> 등 피카소 예술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는 8월 29일까지 진행되는데 벌써 대기 라인이 어마어마해요. 이제 곧 방학이 시작되니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 관람하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