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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Aug 11. 2020

[예능]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누구일까?

2020년 5월 20일, '유 퀴즈 온 더 블럭', tvN

지난 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림과 관련한 흥미로운 퀴즈가 출제되었습니다. 바로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에 대한 문제였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Q. 지난 4월, 세계적인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숨겨진 비밀이 밝혀져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네덜란드 연구진이 최신 기술을 이용해 그림을 정밀 분석한 결과, 소녀의 얼굴에서 이것을 발견한 건데요. 이전의 일부 미술학자들은 소녀에게 이것이 없는 것을 근거로 작품 속 인물이 허구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c.1665, 44.5x39cm

이 아리송한 문제의 정답은 ‘속눈썹’으로, 네덜란드의 서부 도시인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하이스(Mauritshuis) 왕립미술관의 연구팀이 2년간 그림을 조사한 후 발표한 내용입니다. 연구팀은 적외선을 활용한 여러 차례의 촬영을 통해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바깥층의 아래에 숨겨진 그림의 비밀을 밝혀냈습니다. 이들의 발표에 따르면, 속눈썹 외에도 베르메르가 그림을 완성하기 전 소녀의 귀, 머리에 둘러싼 스카프의 위치, 그리고 목의 뒷부분의 위치를 변경한 것이 확인되었고 현재 어두운 색으로 칠해진 소녀의 배경이 원래 짙은 녹색의 커튼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 그림은 어떤 특정 인물의 초상화로 보이지만 사실 모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조사에서 여전히 그림의 실제 주인공을 찾아낼 수 없었음에 아쉬움을 표명하면서도 오히려 이런 미스터리가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녀가 누구일까 추측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 반 크레스벡, <담배 피우는 남자>, 1635-36, 41.5x32cm; 아드리엔 브라우어, <쓴 약>, c.1635, 35x47cm

사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한 초상화라기보다 ‘트로니(tronie)’로 보는 편이 적합합니다. ‘트로니’는 ‘얼굴’을 의미하는 17세기 네덜란드어로 그 어원은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트로뉴(trogne)’입니다. 트로니의 대표적인 예로 17세기에 활동했던 플랑드르 풍속화가 크레스벡의 <담배 피우는 남자>를 들 수 있는데, 화가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물의 유쾌한 표정일 것입니다. 크레스벡과 마찬가지로 플랑드르의 풍속화가였던 브라우어가 그린 <쓴 약> 역시 우스운 표정을 한 얼굴을 통해 트로니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기타 연주자>, 1672; <열린 창문 앞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소녀>,1657-59; <편지를 쓰는 여인>, c.1665

부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 과장된 표정을 보여준다는 특징과 함께 트로니는 특별히 아름답게 만들어졌거나 혹은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색다른 의상을 입은 모델을 가슴 높이까지 그린 전형적인 인물화'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베르메르는 많은 수의 작품을 남긴 화가는 아닌데요, 대중들에게 주로 알려진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베르메르 뿐만 아니라 17세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특별히 주문 받은 초상화가 아니고서야 평범한 여성들을 그릴 때 보통 음악을 연주하거나, 책이나 편지를 읽거나, 무엇인가를 쓰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여인들을 그린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트로니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기에 독특한 느낌을 전달하는데, 아마도 그림 속 인물은 실제로 존재하는 특정인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을 테고, 그녀와 눈을 맞춘 채로 작품 앞에 서 있는 관람객들은 언제나 모호하기에 신비로운 어떤 소녀를 향한 상상의 나래를 끝없이 펼쳐나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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