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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Aug 11. 2020

[뉴스] 흰 족제비 대신 손 세정제?

그림 속 동물의 의미

2020년 4월 27일, SBS

2020년 상반기의 화두는 ‘집콕’이 아닐까 싶은데요. ‘집콕놀이’와 관련하여 며칠 전 뉴스에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했는데, ‘명화 패러디’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참고 화면을 보면 한 여성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바나나와 당근 껍질, 식빵 등의 재료로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러 방법으로 패러디된 명화들 중 동물 대신 손 세정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된 다빈치의 <흰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The Lady with the Ermine)>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흰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1489-90, 54x39cm

<흰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1489-90)은 다빈치가 고향인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의 궁정 화가로 활동했던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초상화의 주인공은 당시 밀라노를 통치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의 연인 체칠리아 갈레라니(Cecilia Gallerani)입니다. 상체를 왼쪽으로 틀고 앉아 있는 갈레라니의 시선은 상반신과는 달리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며, 이러한 동세와 시선의 방향이 그녀가 안고 있는 흰담비의 자세에서 반복됨으로써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빈치는 많은 동물들 중 왜 흰담비를 선택했을까요? 먼저 일종의 말장난(pun)으로 ‘흰담비’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γαλῆ(갈레)’의 음가가 갈레라니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흰담비는 갈레라니를 총애했던 루도비코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루도비코가 1488년 나폴리의 국왕 페르디난드 1세로부터 수여받은 기사 작위의 상징이 바로 흰담비였고 이후 루도비코가 이 도상을 자신의 엠블럼으로 사용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루도비코를 상징하는 흰담비를 안고 있는 갈레라니의 초상은 둘의 연인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순수의 상징으로서의 흰담비>, 1494, diameter 91mm

더하여, 흰담비는 전통적으로 순결과 정절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이 흰담비는 자신의 깨끗한 흰색 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더러운 진창으로 도망치기보다 차라리 사냥꾼에게 잡히는 편을 택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빈치가 1494년에 그린 <순수의 상징으로서의 흰담비>에 이러한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뒤에서 나뭇가지를 치켜든 남성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데도 흰담비는 앞에 펼쳐진 진흙밭으로 도망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흰담비가 등장하는 여인의 초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매우 명확히 드러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을 안고 있는 여인의 순수함이겠지요.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82.2x60cm; 기 프랑수아, <성 로슈와 천사>, 1610, 45.4x34.9cm

흰담비가 순수를 상징한다면, 다른 동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 동물들 가운데 개와 고양이가 그려진 그림을 살펴보려 합니다. 집의 파수꾼으로 여겨지는 개는 충성과 헌신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5세기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아르놀피니의 약혼’으로도 불리는데 손을 맞잡은 부부의 발치에 서 있는 개는 부부간의 정절을 암시합니다. 17세기 바로크 화풍의 작품을 그린 프랑수아의 <성 로슈와 천사>에도 개가 등장합니다. 흑사병 환자를 치유하는 성인이었던 성 로슈는 동시에 개의 수호성인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환자들을 치료하다 스스로도 흑사병에 걸린 성 로슈에게 신실한 개가 빵을 물어다주며 그의 곁을 지켰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프랑수아의 작품에서도 자신의 주인을 지키려는 듯 충직하게 엎드린 개의 앞에 빵이 놓여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렌초 로토, <수태고지>, c.1534, 166x114cm; 피터 파울 루벤스, <수태고지>, c.1628, 310x178.6cm

이번에는 고양이가 그려진 그림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양이, 특히 검은 고양이는 대개 불길함을 연상케 하는 도구로 많이 사용되지요? 하지만 의외로 고양이는 기독교 미술에서 성모 마리아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출산한 것과 마찬가지로 새끼 고양이를 낳은 어느 고양이에 대한 오래된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 로렌초 로토와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가 그린 <수태고지>에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 그리고 고양이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로토의 작품에 묘사된 고양이는 너무 놀라 대천사로부터 몸을 돌려버린 마리아를 향해 뛰어가고 있고, 루벤스의 고양이는 경건한 표정으로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마리아의 곁에서 곤히 자는 중입니다.   


에두아르드 마네, <올랭피아>, 1863, 130.5x190cm;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4, 119x165cm

그러나 중세 시대, 사악한 짐승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고양이는 많은 경우 적대감 혹은 정욕과 연결됩니다. (정작 본인은 인상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네의 <올랭피아>를 보시면 나부의 발 근처에서 검은 고양이가 눈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올랭피아>는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우르비노 공작 귀두발도 델라 로베레(Guidubaldo della Rovere)가 자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주문했던 티치아노의 그림에 그려진 동물은 개입니다. 나체의 여인 곁에서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부간의 충직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마네는 티치아노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개를 고양이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사실 <올랭피아>의 모델은 당대 고급매춘부로, 뒤에 서 있는 흑인 하녀가 들고 있는 것은 손님이 보낸 화려한 꽃다발입니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마네의 고양이가 정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지요.

동물을 안고 있는 자화상을 그린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동물과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으신가요? ‘슬기로운 집콕생활’ 중에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물과 초록이 가득한 평화로운 장소에서 (마스크도 던져버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해 보시면 어떨까요, 작가들이 그 동물을 그림 속에서 어떤 상징으로 활용해왔는지 알아본다면 더욱 좋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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