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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Aug 11. 2020

[뉴스] 한국미술 최고가 작품, 김환기의 <우주>

2020년 5월 12일, YTN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갤러리 현대는 지난 5월 12일,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현대 HYUNDAI 50’을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달 31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를 통해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등 한국의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요,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김환기 화백의 1971년작 <05-IV-71 #200 (우주)>입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환기의 <우주>는 지난해 한국미술 역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는데 이후 작품을 국내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라며 “걸작의 귀환”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환기, <3-II-72 #220>, 1972, 254x202cm; 레오나르도 다빈치, <살바토르 문디>, c.1500,45.4x65.6cm

2019년 11월, <우주>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미술작품으로는 최고가인 131억 8천만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우주> 이전 최고가로 거래된 국내 미술품 역시 김환기 화백의 1972년작 <3-II-72 #220>으로 85억 3천만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주>의 경매가가 확정되었던 2019년 11월 기준 한국미술작품의 경매가 1-10위의 순위를 살펴보면 9위를 차지한 이중섭의 <소>를 제외한 아홉 점이 모두 김환기의 작품입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국내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아우르는 전체 미술작품들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된 그림은 무엇일까요? 바로 2017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5,040억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낙찰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 (구세주)>입니다.)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1954, 46x53cm; <산월>, 1962, 132x163cm

한국미술의 경매 신기록을 매번 경신했던 작가 김환기(1913-1974)는 1933년 일본의 니혼대학 미술부에 입학, 1937년 동경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후 귀국하여 서울대학교(1948-50)와 홍익대학교(1952-55)에서 교수직을 역임하였습니다. 이후 파리와 뉴욕 등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1963년에는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 회화 부문 명예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부제로 알려진 <16-IV-70 #166>을 출품하여 대상을 받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로서의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미술 최고가를 기록한 <우주>와 한국미술대상전에서의 대상 수상작은 모두 푸른색 점으로 가득 찬 전면점화(點畵)로, 작가가 뉴욕에 체류하며 추상화를 실험했던 시기(1963-74)에 그려진 작품들입니다. 이전 작업인 <항아리와 매화>, <산월>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인 기물이나 자연을 소재로 한국적인 정서를 현대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는 서양 현대미술의 새로운 중심지에서 인간의 보다 근원적이고도 보편적인 정서를 탐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김환기, <10-VIII-70 #185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292x216cm

작품 <10-VIII-70 #185>의 부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환기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1969)의 한 구절입니다. 먼저, 김환기가 늘 맘속으로 노래했다던 김광섭의 시를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녁에>는 너와 나의 교감, 관계의 소멸,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담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입니다. 김환기는 점 하나에 고향의 산, 점 하나에 고향의 밤을 물들이던 달빛, 점 하나에 두고 온 소중한 친구를 담아냅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그림을 완성했을 테지요. (혹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의 제목과 도판의 제목이 다른 것을 눈치채셨나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총 5점의 시리즈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김환기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숫자들은 그림이 완성된 날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16-IV-70 #166>은 1970년 4월 16일에 완성한 166번 작업이고 <10-VIII-70 #185>는 1970년 8월 10일에 완성된 185번 작업이라는 뜻입니다.)


김환기, <05-IV-71 #200 (우주)>, 1971, 각 254x127cm

현재 갤러리 현대에 전시되어 있는 <우주>는 254cm x 127cm 크기의 두 화폭을 붙인 것으로, 김환기의 부인이었던 김향안이 ‘너와 나’라는 애칭으로 불렀던만큼 작가 부부가 특별히 아꼈던 그림입니다. 푸른 점들이 원을 이루고 있는 두 개의 캔버스는 각각 음과 양, 남성과 여성, 빛과 그림자를 의미하는데, 이것을 나란히 붙인 두폭화 형식으로 제작함으로써 이분화된 것으로 보이는 세계가 사실은 하나의 우주였음을 상징합니다. 구상에서 반추상, 추상으로의 변화를 보여주었던 김환기의 화면은 사실상 ‘한국의 정서’라는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동양적 세계관을 서양의 방식으로 화폭에 담고자 했던 김환기의 작품은 한국화의 국제화를 논하는 데 가장 성공적인 예로서 언급되곤 합니다. 한국미술 최고가 작품이라는 타이틀도 물론 여기에 한 몫 하고 있지요. 하지만 명상하듯 끊임없이 점을 찍으며 일종의 수도자와 같은 태도로 작업했던 김환기 화백, 자신의 작품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만 설명되는 것을 본다면 아마도 희미하게 슬픈 표정을 짓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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